"이번 참사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닙니다. 희생자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 표현을 제발 멈춰주세요. 지금은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겪을 몸과 고통을 헤아려야 할 시기입니다. "
정찬승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홍보위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30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대중의 비난은 가뜩이나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을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것과 같다"며 "갑작스러운 사고와 죽음이 고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사고를 수습하고 대처하는 것 만큼 그들이 겪을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게 정 위원장과 재난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트라우마는 자연재해, 사고, 폭행, 질병 등 신체, 정신적 충경을 가하는 사건을 겪은 후 극도의 불안과 공포, 고통을 겪는 증상을 뜻한다.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사고가 일어난 29일 밤부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유튜브 등을 통해 현장 영상과 사진이 무차별적으로 확산한 데 있다. 실제 사고 당시 얼굴과 주검이 그대로 드러난 영상과 사진을 접한 일부 시민들 중에선 '차마 영상을 못 보겠다'며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기사와 게시글에는 희생자들을 탓하거나 수위 높은 혐오 댓글들이 달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인명피해 규모 때문에 (이번 이태원 참사를) 세월호 사건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의 반응은 굉장히 다르다"며 "세월호 사건 당시 전 국민이 애도를 표했다면 지금은 희생자와 생존자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쇄도하고 있어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약자 계층인 20대 청년과 외국인들이기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과 현장에 있던 부상자와 목격자, 구조인력은 물론, 각종 뉴스와 SNS를 통해 반복적으로 사고 영상을 접하는 국민들도 잠재적인 트라우마 대상이 될 수 있다. 심리치료가 필요한 트라우마 대상자가 최대 1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 위원장은 "지금은 미디어가 너무 발달해서 사고 현장의 사진,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충격을 받기 쉽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세월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에 노출됐다"며 "소아청소년과 노약자, 임신부 등 심약자나 정신질환 병력이 있다면 반복적인 뉴스 시청을 제한하는 등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뉴스를 시청하는 부모들의 경우, 자칫 희생자들의 잘못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사람 많은 곳엘 가지 말았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 위원장은 "사고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인재'라는 표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재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잘못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사고란 뜻에서 '사회적 재난'이라는 표현을 권고하고 있다. 그는 “참사 후 불안과 공포, 공황, 우울, 무력감, 분노, 해리증상 등의 트라우마 반응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당연한 반응으로 저절로 회복될 수 있다"며 "우울, 불안감이 지속되고 잠들기 힘들 정도로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면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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