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저녁 김대희 씨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친구 라우(21)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에 있다던 라우는 “옆에 있는 여성을 구하려고 한다”며 곤란해하다가 여성의 손이 차가워졌다며 다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김 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창백하고 지친 친구의 모습을 발견했고 몇 시간 후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울 내 한 분향소를 찾은 김 씨는 “라우는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지난해 1월에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으로 왔다”며 “건설 현장에서 일했지만 언젠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고 슬퍼했다.
이날 발생한 핼러윈 참사는 외국인 밀집 지역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만큼 외국인 희생자가 전체 사망자의 16.7%에 달할 정도로 그 수가 적지 않았다. 1일 영국 BBC방송이 전한 말레이시아 청년의 안타까운 사연을 비롯해 세계 여행 중 생일을 앞두고 이태원을 찾은 영화 제작자, 한국을 좋아해서 유학을 온 학생들까지 저마다의 사연에 전 세계의 슬픔도 깊어지고 있다.
호주의 영화 제작사 직원 그레이스 래치드(23)는 세계 여행 중 한국을 찾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극 중 분장을 하고 친구들과 이태원 거리로 나선 그는 이내 인파에 갇혔다. 래치드와 함께 있다가 생존한 친구 네이선 타베르니티는 자신의 SNS에 “래치드가 숨을 쉴 수 없다고 고통스러워했다”며 “인파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후 래치드가 실려 가는 것을 봤지만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고 오열했다. 호주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사고 당일은 래치드의 스물네 번째 생일을 10여 일 앞둔 날이었다.
일본 홋카이도에 사는 도미카와 아유무(60)는 지난달 30일 오전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한국으로 어학 연수를 간 딸 메이(26)가 걱정돼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이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휴대폰을 주운 경찰관이었다. 그럼에도 딸이 무사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버지의 희망은 그날 오후 사망한 일본인 두 명 중 한 명이 메이라는 일본 외무성의 비보에 산산조각 났다. 그는 딸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기 전 일본 취재진을 만나 “딸은 ‘한국에서 여러 일을 하고 싶다’며 어학 연수 전부터 한국어 공부를 했었다”며 “빨리 딸을 만나고 싶다”고 눈물을 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미국인 유학생 스티븐 블레시(20)의 아버지 스티브 블레시(62)의 사연을 전했다. 스티븐은 조지아주 케너소주립대 3학년으로 이번 가을 학기를 한국 대학에서 보내던 중이었다. 스티븐은 사고 당일 아들에게 “밖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알고 있으니 안전하게 다녀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도 답장이 없자 트위터로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접한 스티브는 NYT에 “아들은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며 “한 번에 수억 번을 찔린 것처럼 고통스럽다”고 토로했다.
브래드 웬스트럽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은 31일(현지 시간) 성명을 내고 또 다른 미국인 사망자 앤 마리 기스케(20)가 자신의 조카였다고 밝히며 “그는 신이 우리 가족에게 준 선물이었고 우린 그를 무척 사랑했다”고 애도했다. 기스케 역시 이번 학기를 한국에서 보내던 교환 학생이었다. 이태원 참사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이란 5명, 중국·러시아 각 4명, 미국·일본 각 2명, 프랑스·호주·노르웨이·태국·카자흐스탄 각 1명 등 총 14개국에서 26명의 외국인 사망자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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