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선생님의 교향곡, 협주곡, 오페라 등등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스케일이 커요. 종합예술 성격의 오페라로 약 두 시간 동안 선생의 작품세계를 표현한 것이죠. 규모가 너무 커서 그 동안은 다들 엄두를 못 냈던 작품입니다만, 보고 나면 ‘이래서 윤이상이 위대하구나’ 느낄 수 있을 겁니다”(정갑균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고(故) 윤이상 선생의 대작 오페라 ‘심청’이 약 22년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오르게 되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제작진은 심 봉사가 몸과 마음의 눈을 뜨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 의식과 인간의 구원 등을 강조했던 작품의 메시지를 부각하는 동시에 윤이상의 음악이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심청’은 오는 18·19일 제19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폐막공연으로 대구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선보이게 된다. 이 작품은 독일 정부가 19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문화행사에 올리기 위해 윤이상에게 위촉하면서 만들어졌으며, 동양의 신비한 정신세계를 심오한 음향과 정밀한 설계로써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7년이 흐른 1999년에야 초연될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에 독일어 버전으로 한 번 더 공연했고, 세 번째 무대는 다시 22년을 기다려서야 성사됐다.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직접 담당한 정갑균 예술감독에게 ‘심청’은 언젠가 꼭 무대에 다시 올리고 싶은 꿈이었고, 지난해 예술감독에 부임하자마자 공연을 추진했다. 그는 지난 5일 서울경제와 만나 “현대음악 오페라 중심으로 축제의 성격을 정립하기 위해 새롭고 혁신적인 창의성 높은 작품을 모색하다가 ‘심청’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내 초연 당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최승한 지휘자를 다시 모셨고, 1972년 초연 당시 음원도 저작권 보유자와 협의를 통해 입수했다.
정 감독은 “피카소의 그림이 온전하지 않지만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미술사에서도 가장 현대적 화가로 자리매김했듯 윤이상의 음악, 특히 ‘심청’도 그렇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심청’은 서양음악인 오페라지만 노래는 시조창을 기반으로 풀어가면서 국악적 떨림을 드러내는가 하면 오케스트라를 통해 국악기의 비브라토를 구현하고 있다. 멜로디보다 사운드에 집중하는 가운데 동서양의 리듬이 섞여 있기도 하다. 이런 탓에 노래는 물론 연주가 엄청나게 어려운 작품으로 꼽힌다. 심청 역을 캐스팅하기 위해 국내의 거의 모든 성악가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연주를 맡은 디오오케스트라도 훨씬 많은 연습량을 소화했다.
윤이상의 ‘심청’은 심봉사가 학식은 높지만 자기중심적 성격으로 인해 마음의 눈이 멀고 실제 눈까지 멀었다는 기본 설정이 원작인 ‘심청가’와 차이를 보인다. 심 봉사가 자신의 과오를 참회하면서 눈을 뜨는 순간 온 나라의 병들고 소외된 이들이 구원 받는 장면을 통해 공동체도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메시지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무대도 미니멀한 디자인 하에 영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등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분위기를 강조할 예정이라고 정 감독은 전했다. 그는 “심봉사가 눈을 뜨고 병자들이 구원 받는 장면에서 모든 배우가 가면을 벗도록 설정해 인간의 본성을 회복한다는 상징을 집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청’은 이번 공연 후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극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에서 공연하며, 2026년에는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정 감독은 “공연 소식을 듣고 유럽 여러 극장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에스토니아, 독일 등에서도 공연을 보러 오겠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현대음악의 여러 조류에서 윤이상 역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세계적 대가의 반열에 함께 한다”며 “당연히 조명돼야 했을 그의 음악이 이제야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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