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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ASML





2020년 10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이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반도체 장비 회사 ASML 본사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 부회장은 페터르 베닝크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공급 방안 등을 놓고 긴밀히 협의했다.

ASML은 1984년 네덜란드 필립스와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 ASM인터내셔널이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에인트호번 필립스 본사 옆 목재 건물에서 직원 100여 명 규모로 닻을 올릴 정도로 시작은 미미했다. ASML은 2001년 ‘트윈스캔’이라는 기술로 경쟁사를 따돌리면서 현재 위상을 차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적극적인 기술협력은 경쟁력을 높인 일등공신이다. ASML은 2003년 독일의 광학업체인 칼자이스와 함께 에멀션 방식의 노광장비를 출시했다. 이어 벨기에 아이멕과 공동으로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 모양을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특히 EUV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오늘의 ASML을 있게 했다. 초고가 장비여서 고객이 제한적인 데다 연구개발에 따른 리스크도 컸지만 ASML 경영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2010년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



EUV 노광장비의 대당 가격은 1500억 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물량이 달리며 3000억 원을 호가할 정도다. 덕분에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3년 52억 유로(약 7조 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86억 유로(약 25조 6900억 원)로 세 배 이상 늘었다.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리셰 스레이네마허르 무역부 장관은 최근 “우리 자신의 이익, 즉 국가 이익뿐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가치 동맹을 튼튼히 하면서 정교한 실용 외교로 국익을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초격차 기술을 확보해 실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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