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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위기에도 꿈쩍 않는 '경제 훼방꾼' 4류 정치

◆이상훈 경제부장

무색무취 발언 선호하는 경제학자들 이어

입 무겁다는 관료들 마저 위기 말하는데

정치권선 여전히 '나몰라라' 수수방관중

위기 극복의 큰 그림 밑동부터 흔들려

더불어민주당 정치탄압대책위원회 의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치 탄압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 지키기에 나선 야당 의원의 노력이 눈물겹다. 경제위기 극복에도 이런 식의 관심과 열정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연합뉴스




최근 공개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 의사록. 여기에는 연준이 올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경기 침체를 언급한 대목이 있다.

“연준 소속 이코노미스트들은 미국 경제가 내년 중 경기 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은 거의 기준선에 가깝다고 봤다”고 돼 있는 부분이다. 이를 두고 외신들은 일제히 “연준이 내년 경기 침체 확률을 거의 50%로 내다본 것”이라고 보도했다.

개인적으로 50이라는 숫자에 꽂혔다. 왜 하필 50인가. 51도 아니고 49도 아닌 회색 지대에 서 있는 50만의 마력이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50에는 ‘경기 침체를 경고하고는 싶은데 책임은 지기 싫은’ 심리가 응축돼 있지 않을까 싶다. 정책 당국의 대응에 따라 경제가 침체로 곤두박질칠 수도, 연착륙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일 수도 있을 테다.

역사를 보면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 파국은 대개의 경우 경제학자·관료의 무능을 극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도 연준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잇따른 판단 미스에서 비롯됐다. 후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인플레이션 헛발질은 2008년 부동산 거품을 키워 금융위기를 부른 ‘그린스펀의 풋’만큼이나 두고두고 언급될 것이다.

경제위기를 코앞에 두고도 딴청을 피운 사례는 우리나라도 빠지지 않는다. 김영삼 정권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에 달러를 구걸하기 직전까지 ‘선진국 클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치적인 양 띄웠다. 마치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폭탄이 마지막을 향해 재깍거리는 와중에도 빚더미 경제를 세계 최강국 경제로 호도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자기 임기 동안만 무탈하면 된다’는 무책임과 무능으로는 문재인 정권이 단연 으뜸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 겪고 있는 온갖 고초 중 일정 부분은 지난 정부가 방향감각 상실 속에 잘못된 길로 가고, 또 손을 봐야 하는 것에는 계속해서 판단을 미룬 탓이 크다. 외교·에너지·산업 정책 등이 전자, 재정·복지·노동·교육 등이 후자에 속할 것이다. 여기에는 사익과 공익을 혼돈하고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일관한 관료가 도우미 역할을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금융시장을 보면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대단한 에너지인가 절감하게 된다. 경기 악화로 소비가 줄면서 물가가 조금이라도 빠질라 치면 증시는 환호하고 치솟던 원·달러 환율의 기세는 이내 수그러든다. 금리 인상의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감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는 ‘돈을 더 벌겠다’는 욕망이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본질을 외면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려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고도의 전문성과 직업윤리, 그리고 사회에서 체득한 생존 본능에 따라 무색무취하고 중립적 발언을 선호하는 정책 당국자, 혹은 경제학자의 입에서 경제위기를 말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강도는 세지고 있는 점이다. 11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60주년 간담회에서는 덕담 대신 “우리 경제가 중층·복합 위기”라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 원로의 진단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렸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 인내와 고통을 은유한 ‘진달래꽃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이어 한은마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대로 내렸다고 호들갑이지만 일본 노무라증권은 -0.7%로 점친다.

정치권 눈치 보느라 입이 무겁다는 관료들도 위기를 수시로 말하는 판인데 정작 정치권은 ‘나 몰라라’ 수수방관인 게 진짜 문제다. 세법개정안, 내년 예산안 등이 국회에서 다 엎어질 판이다. 위기 극복의 큰 그림이 밑동부터 흔들린다는 뜻이다. “기업은 이류, 관료·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지적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안팎에서 위기 경보가 요란하게 울려도 ‘경제 훼방꾼’ 정치인들에게는 딴 세상 일일 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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