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서민 감세’ 단독안 처리를 시사하면서 예산안 협상 매듭 풀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기국회 기한 내에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해내지 못하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15일을 처리 데드라인으로 못 박았지만 양측 모두 기존 입장만 되풀이한 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1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서민 지원을 위해 예산을 증액할 수는 없더라도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서민 감세’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공임대주택·지역화폐 등 협상 초반 공언했던 민생 예산 증액을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부자 감세’를 막아 서민·중소기업의 세금을 깎는 방식으로 수정 예산안을 상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국회가 예산 감액 및 세법 심사권이 있는 반면 증액은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이다.
이 대표가 제안한 ‘서민 감세’의 핵심은 중소·중견기업 법인세 인하다. 민주당이 그동안 ‘부자 감세’라고 규정하고 반대해온 정부의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에 대비해 중소·중견기업 감세를 ‘서민 감세’로 부각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과세표준 3000억 원이 넘는 슈퍼 대기업 103곳에 대한 감세가 왜 그렇게 시급하고 중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민주당의 입장은 5만 4000여 곳의 중소·중견기업 법인세를 20%에서 10%로 대폭 인하해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몽니에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조세 전문가인 김 의장이 법인세 중재안을 냈는데도 민주당은 요지부동”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김 의장은 여야에 법인세 최고세율을 정부안대로 25%에서 22%로 인하하되 시행 시기를 2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협상 과정에서 최고세율을 23~24%로 조절하는 방안까지 논의됐지만 야당이 거부하면서 합의가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민의힘에서는 “이 정도면 정부 발목 잡기가 아니라 발목 꺾기”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예산 편성권은 정부에 있다”며 “민주당의 주장은 옆집에서 짜준 살림살이 표대로 자기 집 살림을 운영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은 지금 정부안에서 감액만 한 수정안을 제출해 표결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며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예산을 처리한다는 것은 대선 불복과 다르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법인세 말고도 세법과 예산안 곳곳에서 여야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는 여야 모두 2년 유예 방침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거래세를 0.15%로 인하하자는 민주당의 요구에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미 세입·세출 규모를 상당히 줄여둔 터라 추가적인 세입 감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정부는 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요건은 조절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초 정부는 상장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을 보유액 100억 원(현행 10억 원)으로 높이는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예산 감액 규모도 여전히 핵심 쟁점으로 남아 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당시 연평균 5조 1000억 원을 줄여왔다는 점을 근거로 최소 4조 원 이상 감액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2023년 예산안은 이미 20조 원 이상 구조 조정된 예산안이어서 평년과 같은 수준의 감액은 불가능하다며 최대한 감액해도 3조 원이 안 되는 금액이 한계라고 맞섰다.
다만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사실상 합의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종부세의 경우 조정대상지역과 무관하게 3주택 이상만 중과세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1세대 1주택자 기본공제액은 11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올리고 2주택자 이상 기본공제액 역시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인상하기로 했다. 종부세 인상 상한은 연 300%에서 150%로 낮춘다. 상속세의 경우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일부 완화하고 나머지 제도 개선은 내년에 논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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