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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우선주의, 유럽 우선주의, 중국 우선주의[윤홍우의 워싱턴24시]

美 560조 보조금 잔치에 유럽 분노

中견제 명분…유럽도 맞대응 나서

세계 3대 경제권에 '보호주의 물결'

국내 주력산업 생존 방안 서둘러야

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합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잉과 에어버스를 둘러싼 무역 분쟁이 끝난 것이 불과 1년 전의 일입니다. 유럽이 미국에 느끼는 배신감은 한국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DC의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연합(EU) 간의 갈등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유럽의 보호주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무려 17년간 지속된 미국과 EU의 ‘항공기 전쟁’도 시작은 IRA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을 양분하던 보잉과 에어버스에 미국과 EU 정부가 각각 보조금을 지급하며 무역 분쟁이 시작됐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보복 관세로 이어지며 엉뚱한 치즈·담배·주류 업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지난해 6월에야 가까스로 봉합됐는데, 당시 양측은 통상 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 항공기 산업에 공동 대응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랬던 미국이 불과 1년여 만에 기후변화 대응을 이유로 무려 4300억 달러(약 560조 원) 규모의 산업 보조금 정책인 IRA를 내놓자 EU 안에서는 “미국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팽배하다. 외교 소식통은 “EU의 반발은 한국처럼 단순히 전기차 보조금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면서 “태양광이나 풍력, 그린 설비 등 유럽이 미래 산업으로 점찍은 분야를 미국이 자유 경쟁이 아닌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동원해 선점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역내 경기가 침체로 치닫는 상황에서 에너지와 무기 수출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미국이 보조금 잔치를 벌이는 것에 분노하고 있다. 유럽을 대표해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만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IRA를 통해) 미국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문제는 더 커질 것”이라며 미국을 직격했다. 앞서 독일 자동차 회사 BMW가 미국 내 전기차 시설에 총 17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히자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장관도 “유럽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럽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중국 견제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는 미국의 산업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IRA의 일부 결함을 인정하며 미세 조정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이는 그야말로 ‘미세한’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법안의 주도권을 쥔 미국 의회의 목소리는 더 강경하다. 론 와이든 상원 재무위원장은 “IRA 법안의 목적은 유럽 자동차 보조금 지원이 아닌 미국 내 고소득 일자리 창출”이라며 유럽의 반발에 선을 그었다.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유럽의 대응이다. 유럽의 한 통상 당국자는 “미국은 중국을 자유무역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에 실패하자 사실상 중국식 정책에 합류했다”며 “양측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온 EU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최근 ‘브뤼셀이 자유무역의 이상을 버릴 준비를 하고 있다’며 유럽도 결국 중국과 미국이 펼치고 있는 보호주의 게임에 합류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경쟁자들의 적극적인 산업정책은 (유럽에) 구조적 해법을 요구한다”며 “유럽은 유럽을 위해 옳은 일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세계 3대 경제권으로 확산하는 보호주의 물결은 우리 같은 통상 국가에 거친 파도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 주력 산업을 보호하면서 일본 등 주변국과 연대를 강화하는 등 생존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해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IRA에서 한국이 주목해야 할 건 현대차가 내년에 전기차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보다도 IRA로 달라지는 통상 환경의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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