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로봇 기술을 활용한 차익 거래(arbitrage transaction)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금을 들고 잠적한 사례가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사기 행각을 벌인 업체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투자 설명회를 열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정확한 피해액 등을 파악하고 있다.
15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일본 주식회사 대표 구 모 씨 등 7명을 사기,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 중이다. 이들은 2019년부터 일본 오사카에 법인을 두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자 설명회 등을 연 뒤 피해자들에게 자금을 받아 잠적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구 씨 일당은 동일한 코인이 거래소마다 다른 가격에 판매된다는 점을 내세워 피해자들을 유혹했다.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코인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차익 거래 방식으로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구 씨 일당은 “꿈의 기술을 독점 보유하고 있다”며 “원금은 철저히 보장되고 매달 원금의 27%를 수익으로 지급하겠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약속과 달리 수익금과 원금 지급은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이 독자적으로 확보했다던 기술 역시 사기였을 확률이 높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구 씨 측이 홍보한 차익 거래 자동화 시스템은 외국 코인 거래소에서 입출금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트래블룰’ ‘화이트리스팅’ 등의 규제에 따라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창배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코인 거래를 자동화해 차익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실현하는 기술을 개발한 기업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도 없고 실제로 개발한 기업이 있는지조차 미지수”라며 “이론상으로는 기술 구현이 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실제로 기술을 개발해 보유하고 있어도 신뢰할 수 없고 이런 기술을 확보했다고 홍보하는 기업이 있다면 사기성이 짙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구 씨 일당에게 당한 사람들이 수백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피해자 최 모(34) 씨는 “대구·경북을 비롯해 제주 등 기타 지역 피해자 100여 명이 이미 고소장을 접수했다”며 “고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카톡방에도 방 한 개당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가 전국적으로 발생했고 전국 각지에서 고소장이 접수되고 있는 만큼 아직 다 취합하지는 못했다”며 “향후 수사를 통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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