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인 지난해 12월의 일이다. 전 세계 골프팬의 이목은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칼튼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이벤트 대회인 PNC 챔피언십에 쏠렸다. 그보다 10개월 앞선 2월 심각한 교통사고로 당했던 우즈가 처음으로 출전하는 골프 대회였기 때문이다.
우즈의 몸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는 새로운 드라이버로 300야드의 장타를 날려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우즈가 들고 나온 제품은 테일러메이드가 그 이름처럼 꽁꽁 숨겨가며 개발한 ‘스텔스’였다. PNC 챔피언십은 스텔스 드라이버가 대중에게 공개된 첫 순간이었고, 이를 소개한 이가 우즈였다.
스텔스 드라이버가 용품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끈 건 우즈가 사용한다는 사실 외에 헤드에 적힌 ‘카본 우드’라는 용어의 영향도 컸다. 카본은 주로 헤드의 크라운 등에 무게를 줄이는 차원에서 사용됐는데 페이스에 본격적으로 적용됐기 때문이다.
용품업계는 왜 카본의 등장에 주목하는 걸까. 카본은 탄소 섬유로 이뤄진 물질을 말하는데 골프 등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그라파이트(graphite)는 흑연이라는 뜻이다. 카본(carbon)은 라틴어로 목탄이라는 뜻인 카보(carbo)에서 유래했다. 현대에서 카본은 고급 자전거,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등 우리 실생활은 물론 첨단 산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티타늄은 스틸보다 45% 가볍다
카본은 티타늄보다 40% 가볍다
카본이 널리 쓰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무게다. ‘엔지니어에게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건 금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무게를 줄여야 부피를 늘릴 수 있고, 가볍게 만들어야 빠르게 달리거나 높이 날 수 있어서다. 티타늄은 스틸에 비해 45% 가볍고, 카본은 티타늄에 비해 40% 가볍다. 더구나 카본 섬유는 여러 겹이 결합하면 스틸보다 강해진다. 드라이버 헤드가 나무에 이어 스틸, 티타늄, 카본 순으로 진화해온 주요 배경이다. 다른 산업의 소재 역사를 봐도 이 순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카본 페이스 드라이버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건 아니다. 카본의 성능에 주목해 이를 골프채에 활용하려는 시도는 이미 40년 전부터 있었다. 1982년 일본에서였다. 그보다 3년 전인 1979년에 스틸 헤드 우드가 나왔지만 여전히 퍼시몬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다.
1982년 일본 골프계는 ‘카본 헤드’ 경쟁
일본 골프다이제스트 보도에 따르면 야마하는 1982년 4월 “올 가을부터 골프 용품 시장에 진출한다”고 선언하며 “메탈 우드를 뛰어넘는 획기적인 신소재를 채용할 것”이라고 했다. 뒤이어 6월에는 다이와와 미즈노도 카본 우드를 가을에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카본 우드 출시를 맨 처음 공표한 곳은 야마하지만 가장 먼저 제품을 선보인 건 미즈노였다. 그해 8월부터 뱅가드 드라이버를 발매했다. 헤드의 몸통과 페이스는 카본으로 만들고 솔 부분에는 금속판을 댔다. 다이와는 9월, 야마하에서는 11월에 카본 드라이버가 나왔다. 이 3개 회사 외에도 여러 브랜드에서 카본 우드를 만들었다. 요넥스는 퍼시몬과 카본을 결합한 드라이버를 선보였다.
당시 요넥스의 제품 소개서를 보면 “테니스와 배트민턴 시장에서 축적된 카본 그라파이트 기술을 골프에 접목했다. 우리의 카본 헤드는 기존 전통적인 클럽에 비해 5배 강하다”라고 쓰여 있다. “멀티 레이어 구조로 스위트스폿의 면적을 넓히고 헤드 무게를 주변부로 배치했다”는 문구도 있다. 요즘의 제품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60겹 카본으로 둔탁한 타구음 문제 해결
카본 우드의 최대 단점은 둔탁한 타구감과 타구음이었다. 1980년대의 기술력으로는 이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카본 우드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 티타늄 드라이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카본 우드는 한동안 골퍼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티타늄을 대체할 마땅한 소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2002년 캘러웨이가 야심차게 카본 페이스를 장착한 C4 드라이버를 내놨지만 역시 ‘퍽’ 하는 타구음 때문에 실패를 맛봤다.
그럼에도 클럽 제작자들은 카본의 매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헤드의 전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몸통과 크라운 등에 카본을 꾸준히 접목해 왔다. 그러다 타구음 문제를 해결하며 페이스에 카본을 접목한 게 올해 출시된 테일러메이드의 스텔스였다. 테일러메이드는 자세한 공법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60겹의 카본을 붙이고, 솔에는 티타늄을 사용하는 방법 등을 통해 난관을 뚫었다고 한다.
‘카본 우드’ 시대는 본격적으로 개막한 걸까. 시장의 반응이 가장 중요한 관건인데, 소비자들의 카본 페이스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고 용품업계의 카본 활용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우즈 외에 로리 매킬로이, 스코티 셰플러, 콜린 모리카와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카본 우드를 휘두르며 힘을 보태고 있다. 변화의 큰 흐름은 시작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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