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들을 옥죄던 설립·운영 요건과 기본역량진단 평가를 전면 개편하기로 하면서 자율 혁신을 위한 기반이 마련됐으나 등록금 동결로 날로 심화하는 재정난을 해소하고 한계대학 퇴로 마련을 통한 고등교육 구조 개편 방안도 서둘러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 재정 지원 확대를 위해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신설이 추진되고 있으나 야당과 초중등 교육계의 반발에 가로막혀 내년 도입이 불투명한 상태다. 한계대학 퇴로 마련을 위해 필요한 사립학교법 개정 역시 야당의 협조 없이는 힘들기 때문에 2024년 총선 이후에나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부가 16일 발표한 대학 규제 개혁 및 평가 체제 개편 방안에는 대학의 재정난을 완화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다. 학교법인이 충분히 수익을 창출해 대학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수익용 기본재산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학교법인이 실질적으로 수익 창출 및 대학 재정 기여를 위해 노력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대학 구조 개편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도 포함됐다. 대학·전문대, 대학·산업대 등이 통합할 경우 정원을 감축하도록 한 조건을 삭제해 대학 간 통폐합을 촉진하겠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과거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재정난 해소와 고등교육 구조 조정을 위한 추가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신설이 대학 재정난 완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수 있지만 14년째 이어지고 있는 등록금 규제를 풀어야만 자율 혁신을 위한 ‘물꼬’가 트인다는 주장이다.
2010년대 들어 ‘반값 등록금’ 정책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국내 일반 4년제 사립대 157개교(사이버대 제외) 가운데 운영 수익보다 운영 지출이 많아 적자를 기록한 대학은 총 120곳에 달할 정도로 재정난이 심화한 상황이다. 대학 규제 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내건 윤석열 정부의 출범으로 등록금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으나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물거품이 되는 모양새다.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은 최근 3년 동안 평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정부가 2012년부터 등록금 동결·인하 대학에만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지원하기 때문에 대학이 등록금을 올리기 힘든 구조다. 한 대학 관계자는 “등록금이 대학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고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대학 재정 지원을 확대하면 대학들이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책정하더라도 과도하게 인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대학 입학 자원이 갈수록 줄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 임기 내에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힘들고 회생이 불가능한 한계대학에 대한 퇴로를 마련해 고등교육 구조 조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교육부가 한국사학진흥재단의 경영 진단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매년 30~40개 대학이 경영부실대학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380여 개의 대학 중 부실대학은 70~80곳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2000년 이후 강제 폐교되거나 자진 폐교한 대학은 17곳에 불과하다.
대학 통폐합과 구조 조정이 힘든 것은 사학법인 해산 시 정관이 없으면 학교 재산이 국고나 지방자치단체로 귀속되도록 돼 있어 설립자가 학교 문을 스스로 닫는 데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사립학교법 개정을 통해 사립대 설립자의 재산 처분 적정선을 보장해 퇴로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진보 교육계를 중심으로 ‘먹튀’ 논란이 제기되면서 번번이 무산됐다.
교육부도 부실대학의 퇴로를 마련하기 위해 사립학교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나 거대 야당과 진보 교육 진영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 등록금 규제 완화와 함께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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