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의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상황실장(경정)이 구속 수감됐다. 참사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는 피의자가 구속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수본은 참사 당일 소방 현장 지휘책임자였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도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원규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3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들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모두 발부했다.
특수본은 이달 5일 용산서와 서울경찰청 정보담당 간부 2명을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이 연루된 이른바 ‘핼러윈 위험분석보고서 삭제 의혹’은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 규명보다는 사후 대처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였다.
◇이임재·송병주 두 번째 영장 신청…허위공문서 작성 혐의 추가
특수본은 앞서 이달 1일 이 전 서장과 송 전 상황실장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특수본은 이후 이들의 혐의를 뒷받침할 증거와 법리를 보강하는 한편 이 전 서장에 대해서는 허위공문서작성·행사 혐의도 추가해 지난 20일 두 번째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 전 서장은 이태원 참사 전후 적절한 대책 마련과 대응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와 자신의 현장 도착 시간이 허위로 기재된 상황보고서를 검토하고도 바로잡지 않은 혐의(허위공문서작성·행사)를 받는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당일 오후 11시 5분께 현장 인근인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용산서 상황보고에는 실제보다 48분 이른 10시 17분 도착한 것으로 기재됐다.
송 전 실장은 참사 직전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 신고에도 차도로 쏟아져나온 인파를 인도로 밀어올리는 등 적절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를 받는다. 상관인 이 전 서장에게 제때 보고하지 않고 현장 통제도 미흡하게 해 구조를 지연시킨 혐의도 있다.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현장 도착 후 40분간 지휘 공백” vs “구조 지시 있었어”
특수본은 이와 함께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에 대해서도 보강 수사를 마무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특수본은 최 서장의 부실한 구조 지휘가 인명 피해를 키우는 중요한 원인이 됐다고 보고 있다. 참사 당일 소방서장이 현장에 도착한 오후 10시 28분께부터 지휘권을 선언한 11시 8분까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오후 11시 7분께는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상황 보고가 이미 이뤄지고 있었고 소방 내부 단체 채팅방에도 관련 내용이 보고되기도 했다. 최 서장이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이미 인파 끼임으로 대규모 사상자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최 서장은 40분 동안 무전을 듣고 이 모 용산소방서 현장지휘팀장과 대화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현장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특수본은 파악했다. 특수본은 최대 20m에 이르는 인파 끼임이 완전히 해소된 시각을 오후 11시 22분으로 보고 있다. 특수본 관계자는 “상황 보고가 되기 이전부터 상황이 심각했는데 최 서장이 규정에 맞는 대응단계 발령을 하지 않았다”며 “적절한 구조 지휘가 있었으면 (11시 22분보다) 더 일찍 끼임이 풀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참사 당시 대응 1단계는 현장지휘팀장이 오후 10시 43분에, 2단계와 3단계는 서울소방재난본부장이 각각 오후 11시 13분과 오후 11시 48분에 발령했다. 10명 이상 인명피해가 발생할 때 발령하는 대응 2단계는 자치구 긴급구조통제단장, 즉 용산소방서장도 발령할 수 있다.
특수본에 따르면 참사 당일 사상자를 인파 속에서 빼내려는 시도는 10시 18~19분께 처음 이뤄졌다. 현장 인근에 있던 경찰관들이 내리막길 아래 방향인 이태원역 쪽에서 사람들을 빼내려고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아 내리막길 뒤쪽, 인파 대열 뒤편으로 돌아갔다. 이후 10시 27~28분께부터 인파를 통제하며 사상자들을 빼내기 시작했고 뒤늦게 도착한 소방관들이 이에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소방당국의 구호 조치가 경찰보다 늦은 데는 최 서장 등 지휘부 책임이 크다고 특수본은 보고 있다.
최 서장은 특수본의 이러한 판단을 전면 반박하고 있는 상태다. 최 서장은 “지휘권을 선언하기 전에는 직접 지시한 내용이 무전 기록에 없지만, 옆에 함께 있던 지휘팀장을 통해 구조 지시를 무전으로 전달했다”며 “대열 앞쪽에서 도착하는 구급대원들을 뒤쪽으로 보냈고 대응 1단계가 발령된 뒤에는 뒤쪽으로 이동해 (끼인 시민을) 빼내는 작업을 같이했다”고 주장했다.
◇보건소장 현장 도착시간 허위 기재 정황…응급환자 분류 미흡 책임도?
특수본은 이와 함께 최재원 용산구보건소장의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에 대한 수사도 이어가고 있다. 최 소장은 참사 현장에 도착한 시간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로 이달 6일 입건됐다.
참사 당시 현장과 가까운 순천향대병원에 1순위 응급환자 아닌 사망자가 대거 이송되면서 응급조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짧지 않은 시간 방치됐다. 특수본은 응급환자 분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 소방당국은 물론 용산구보건소의 책임이 있는지도 따져보고 있다. 응급환자 매뉴얼대로라면 환자를 ‘긴급-응급-비응급-사망’ 4단계로 분류해 조치가 시급한 환자부터 병원으로 이송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참사 직후 현장에 도착했으나 인파와 경찰의 제재로 제때 접근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특수본은 최 소장이 현장으로 바로 오지 않고 자택에서 보건소로 갔다가 보건소 부하 직원들과 함께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파악했다. 최 소장은 오후 11시 30분께 현장 인근에 도착했다가 인파에 밀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채 구청으로 돌아갔다가, 이튿날 0시 9분 현장에 다시 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부 문서에 오후 11시 30분께부터 현장에서 곧바로 구조를 지휘했다고 거짓으로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자체 재난 대비·구호 1차 책임…‘윗선’ 본격 수사 가능성
용산구청과 용산소방서 등 지역 재난담당 기관은 물론 서울시청과 행정안전부 등 ‘윗선’ 수사가 본격 확대될 가능성도 열렸다.
법원은 이날 보강수사 결과를 토대로 일선 경찰 책임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상당 부분 소명됐다고 판단했다. 특수본은 재난안전법상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에 대비하고 구호할 1차적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경찰보다 혐의가 무겁다고 본다.
특수본은 이미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최원준 용산구청 안전재난과장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상태다. 이들은 구속된 용산경찰서 간부들과 마찬가지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다. 최 과장은 참사 수습에 필요한 조치를 고의로 게을리 한 혐의(직무유기)도 있다. 이들의 구속 여부는 오는 26일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서 결정된다.
특수본은 이태원파출소 직원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다음주중으로 피의자 추가 입건 여부에 대해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 등 핵심 피의자에 대한 조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에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핼러윈 위험분석 보고서 삭제에 관여한 혐의(증거인멸교사)로 검찰에 송치된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공공안녕정보외사부장(경무관)과 김진호 전 용산서 정보과장(경정)의 구속기한은 내년 1월 1일까지로 연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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