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력을 빨리 보내달라고 하니 사전 교육을 늘리고 싶어도 늘릴 수 없습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비자(E-9) 업무를 담당하다 퇴임한 한 임원은 외국인근로자에게 사전 교육을 충분히 시킬 수 없는 배경이 인력 수요 요청에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근로자를 빨리 공급받고 싶어하는 국내 기업과 수요 때문에 한국에서 원활히 적응하는 데 필요한 언어·문화·직업능력 향상을 충분히 지원하거나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E-9을 받아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근로자는 현재 입국 전 45시간, 입국 후 16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다만 필수 교육 시간 등이 법에 규정돼 있지 않은 데다 짧은 시간의 교육이 외국인근로자의 원활한 현지 적응을 보장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일정 수준의 EPS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점수를 취득하고 건강검진만 거치면 한국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E-9 제도를 우선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점차 커지고 있는 만큼 불법체류·마약 등 외국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 보완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의미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난 인력 송출 회사 관계자들은 E-9 제도의 핵심 개편 방향으로 한국 정부가 더 많은 선발 주도권을 쥐는 방안을 제시했다. 외국인근로자를 대상으로 충분한 교육을 실시하고 적응력을 면밀히 평가해 선발하는 것이 불법체류율을 낮추기 위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고용허가제는 국가 대 국가 간 협약으로, 인력 선발 과정은 한국 정부와 현지 정부가 함께 주관한다. E-9을 통해 한국에 취업하고자 하는 외국인은 EPS 한국어능력시험과 기능 평가를 치러야 한다. 이 과정을 통과한 뒤 건강검진과 범죄 사실 확인 등을 거친 외국인근로자는 ‘인력 풀’에 등재된다.
한국 기업이 채용 희망 외국인근로자의 성별, 나이, 한국어 능력, 키·몸무게 등의 요건을 기재해 공고 신청을 하면 전산 시스템이 이에 적합한 인력을 인력 풀에서 3배수로 추천한다. 희망 채용 인력이 3명인 경우 9명을 추천받는 식이다. 사업주가 이들 가운데 선발해 계약을 체결하면 채용 인력은 송출 국가의 송출 기관에서 사전 교육을 받은 뒤 입국한다. 입국 후에는 16시간 이상(2박 3일)의 교육을 받고 사업장에 취업하게 된다.
베트남 현지 전문가들은 E-9으로 취업하려는 인력의 교육 기간을 더 늘려 적응력 등을 면밀히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홍선 주베트남 한국상공인연합회(코참) 회장은 “한국의 고용허가제 시스템은 우수 인재를 뽑아갈 수 없는 시스템”이라며 “불법체류율 증가가 우려돼 까다롭게 외국인근로자를 받겠다고는 하지만 현재 지원 자격은 최소한의 토픽 점수만 요구하고 있어 누가 인재인지, 업무 능력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한국의 E-9 개편 방향으로 제시한 일본의 기능실습생들은 6~8개월가량의 언어·문화·기능 사전 교육을 받고 입국한다. 하노이에 위치한 인력 송출 회사인 VXT의 꽝부홍 사장은 “일본에서 일하려는 구직자는 6~8개월간 언어와 기능을 공부해야 한다”며 “일본은 현지 소통을 위해 언어 능력을 갖출 것을 엄격하게 요구한다”고 전했다. 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일본 기업은 관계자가 베트남을 방문해 면접으로 지원자의 언어·기능 능력과 인성, 일본 적응 가능성을 평가한 뒤 인력을 직접 선발한다.
이처럼 적응 가능성을 면밀히 평가하지 않은 채 외국인근로자 도입 규모를 늘리면 불법체류자 증가는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외국인 불법체류율은 2018년 15%(36만 명), 2019년 15.5%(39만 명), 2020년 19.3%(39만 명), 2021년 19.9%(39만 명), 2022년 11월 기준 18.8%(41만 명)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베트남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교육 시스템을 마련 중인 박창덕 한국이민사회전문가협회(KIPA) 해외협력본부장은 “외국인 구직자가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충분히 이해하고 사업장에서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회화 능력을 갖추도록 사회 통합 프로그램 등을 확대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베트남 구직자는 본인이 어느 분야에서 일하게 되는지도 모른 채 한국에 가는 경우가 많다” 며 “인력 선발 과정에서 최소한의 한국어 능력과 건강검진 정도만 요구하고 있어 정작 함께 살아갈 외국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고 인력을 뽑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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