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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보릿고개가 투자업계에 남길 교훈

김선영 시그널부 기자





지난해 사모펀드(PEF) 업계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단어가 자조 섞인 농담으로 쓰였다. 연초만 해도 쏟아지는 유동성에 분주히 투자를 추진했지만 막 내린 유동성 파티에 모두 남은 곳간 지키기에 바빴다. 급격한 시장 변화에 숨을 죽인 셈이다.

어느새 시장에서는 “되겠어?”라는 패배주의가 번졌고 이는 포기로 이어졌다. 홍콩계 사모펀드인 베어링PEA는 폴리이미드 필름 생산 기업 PI첨단소재를 1조 원이 넘는 가격에 인수하려고 계약까지 체결했다가 막판에 거래를 철회했다. 주가 하락과 동시에 인수금융 금리 상승의 악재가 겹쳤기 때문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JCGI의 넥스플렉스 인수와 칼라일그룹의 메디트 인수가 불발되는 등 지난해에는 막판에 엎어진 씁쓸한 결말이 많았다.

그러나 ‘투자 없이 회수도 없다’는 사모펀드의 생존 원리는 지금도 시장의 패배주의를 잠재우고 있다. KG그룹은 캑터스PE와 생사기로에 선 쌍용차에 1조 원을 베팅했고 SD바이오센서는 SJL파트너스와 손잡고 미국 진단 업체 메리디언 바이오사이언스를 2조 원에 인수했다. 모두 위기 속에서 사모펀드의 조력이 빛난 거래다.



경제가 지금처럼 하강했던 2012년 당시 한 사모펀드 운용사의 투자 키워드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이었다. 호랑이의 예리한 눈으로 소처럼 성실히 나아가자는 의미다. 당시의 투자는 이들을 대형사로 성장하게 한 밑거름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1년간 시장에는 가장 많은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유동성에 허덕이며 경영권을 내놓았으나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기업가치 1조 원의 유니콘을 꿈꿨던 한 스타트업은 10분의 1이 된 기업가치를 받아들인 경영진이 직접 발로 뛰며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다. 패배주의만 없다면 어느 때보다 투자의 문은 열렸다.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는 옛말은 사모펀드의 투자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올해는 낮은 수익률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구조 조정 펀드들이 활성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잠재력이 충분한 기업에 성장 자금을 수혈하는 성장(growth) 펀드도 시장의 백기사로 존재감을 한층 키울 수 있다. 보릿고개를 지나는 2023년, 사모펀드 업계에 남을 교훈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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