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수익 환수가 어려운 것을 틈타 사기·유사수신 피해자의 적반하장이 도를 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액 일부조차 돌려받지 못할 것을 걱정한 피해자가 오히려 피의자에게 사정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피해 금액의 10% 정도로 합의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재범을 저지르는 사기·유사수신 범죄자도 늘어나며 이들의 범죄행각이 ’시스템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지방법원 제13형사부(호상호 부장판사)는 최근 공동구매로 체온계 등 물건을 시중가보다 40~50% 싸게 구입할 수 있다며 피해자 수백 명으로부터 약 670억 원을 편취한 김 모(39) 씨에 대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은 제품을 40~50% 가격으로 매입할 수 있는 의사나 능력이 전혀 없었다”며 “다수의 사람들에게 다양한 제품들을 마치 반값에 구매해 줄 수 있는 것처럼 기망했다”고 판시했다.
이들은 초기 체온계 등 값싼 물건을 약속한 가격으로 피의자에게 실제 제공해 신뢰를 쌓은 뒤 이후 실버바, 골드바 등 값비싼 물건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와 공모한 혐의가 인정돼 인천구치소에 수감 중인 A 씨는 현재 인천지방법원의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이들에게서 피해액을 환수할 ‘뾰족수’가 없다는 점이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김 씨와 A 씨는 자금이 없다는 이유로 은닉한 수익금을 밝히지 않고 있다. 생활비 마련조차 어려운 피해자들이 오히려 이들을 찾아가 합의해주겠다며 “피해액의 10%만 달라”고 부탁하는 상황이다. 강봉성 법률사무소 보정 대표는 “범죄자가 당당하게 나오고 피해자가 오히려 합의를 위해 사정해야하는 상황”이라며 “사기·유사수신 사건은 특히 합의를 진행할 경우 감형 가능성이 크다. 생각하는 것보다 현실은 참혹하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 뿐 아니라 사기·유사수신 사건 대부분이 유사한 구조로 ‘시스템화’됐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피의자가 범죄를 저지른 후 수익을 해외 가상자산 등으로 은닉하면 피해자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으로 합의할 수밖에 없고, 결국 범죄자는 상당한 수준의 감형을 받는 식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1심에서 징역 10년 형을 받은 김 씨의 경우에도 항소심과정에서 이뤄진 합의로 인해 5~7년 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강 변호사는 “해외 가상자산으로 범죄수익을 빼돌리면 찾을 길이 없다”며 “범죄자들이 몇 년간의 징역에도 ‘남는 장사’라고 인식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실제 최근 서울경제가 지난해 선고된 유사수신행위 혐의 1심 판결문 58건을 전수 조사한 결과 사기범의 66%는 벌금형과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징역형의 중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33%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이 중 3분의 1은 1년 이하의 징역형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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