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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 위조로 유대인 1만명 구했다…‘위조 전문가’ 별세

‘반나치 저항 운동’ 프랑스 아돌포 카민스키 향년 97세 별세

염색 공장서 익힌 기술 활용해 신분증·직인·워터마크 등 변조

위조 신분증으로 유대인 어린이 나치 독일 점령지 탈출 도와

신분증을 위조해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한 아돌포 카민스키가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그는 사진가로도 활동했다. AFP 연합뉴스




나치 독일의 점령하에 있던 프랑스에서 유대인의 생명을 구한 위조전문가 아돌포 카민스키가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뉴욕타임즈(NYT)는 지난 9일(현지시간) 아돌포 카민스키가 파리의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1925년 프랑스에서 탈출한 러시아계 유대인 부모에 의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카민스키는 프랑스가 나치 치하에 있던 시절 숱한 목숨을 살린 ‘위조범’이다.

프랑스에서 유대인 마르크스주의 신문사 기자였던 카민스키의 부친은 프랑스 정부의 탄압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도피했다가 1930년대 초반 프랑스로 돌아왔다. 카민스키 가족은 1941년 나치에 의해 체포돼 수용소에 보내졌으나, 소지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여권 덕분에 3개월 만에 풀려났다.

카민스키는 어린시절 노르망디에서 자라며 염색 공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옷에 묻은 다양한 잉크를 지우는 기술을 배우게 된 그는 18세에 파리에서 반(反)나치 저항운동 조직 레지스탕스에 합류해 유대인 구출을 위한 위조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수많은 신분증을 위조해 사람을 살렸다.

그는 지울 수 없다고 알려진 신분증 서류의 파란 잉크를 지우는 기술로 신분증에 적힌 유대인들의 이름을 바꿔줌으로써 그들이 수용소에 끌려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에서 '이삭'이나 '아브라함'처럼 유대계 프랑스인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을 지우고 프랑스인의 느낌이 나는 새 이름을 입력했다.



신분증에 새로운 이름을 새기는 과정에선 초등학교 시절 학교 신문을 편집할 때 배운 기술을 이용했다. 카민스키는 기존 신분증을 수정하는 것 외에 위조문서를 만들기도 했다. 고무를 이용해 관공서의 직인과 문서 상단의 레터헤드, 워터마크까지 제작했다.

카민스키는 생전 인터뷰에서 유대인 어린이를 위해 900장의 출생증명서와 300장의 식량배급 카드를 사흘 안에 위조해달라는 주문을 받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카민스키가 밤을 새워 만든 위조문서를 사용해 유대인 어린이들은 스위스나 스페인 등 인근 국가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일을 위해 이틀 넘게 잠을 자지 않고 서류를 만들었다고 한다. 카민스키는 “한 시간동안 증명서를 30개 만들 수 있는데, 한 시간을 자면 30명이 죽는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격려했다고. 이런 식으로 카민스키가 만든 위조문서로 수용소행을 피하고 생명을 지킨 유대인의 수는 1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어린이였다.

그의 위조 작업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도 30여년간 계속됐다. 종전 직후에는 정보 요원들이 ‘죽음의 수용소’에 대한 증거를 수집할 수 있도록 나치의 점령지역에 침투할 수 있는 공문서를 위조했다.

이밖에도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과 프랑스령 알제리, 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의 저항 세력을 문서 위조 기술을 통해 도왔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징병을 회피하려는 미국인들을 위해 서류를 조작해주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부터 카민스키는 위조와 관련된 일을 그만두고 사진가로 전업했다.

2016년 자서전이 출간되며 그의 업적이 알려지게 되었고, 같은 해 뉴욕 타임즈에서 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위조범(The Forger)'을 제작해 에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의 도입부에서 카민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불법이었다. 그러나 합법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성을 송두리째 위협할 때, 우리는 싸워야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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