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글로 된 장황한 설명보다는 한 장의 그림이 어떤 사실을 더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 신간 ‘도시의 만화경(萬華鏡)-도시그림, 현실과 동경을 넘나들다’는 도시를 그린 그림지도를 통해 동서고금의 도시의 인문학을 보여준다.
책에 나온 도시는 시에나·피렌체·베네치아·암스테르담·파리·로마·런던·빈 등 유럽 8곳, 서울·카이펑·쑤저우·베이징·교토 등 동북아시아 5곳, 뉴욕 등 북미 1곳, 이스파한 등 중동 1곳을 포함해 모두 15곳이다. 시기는 가장 빠른 12세기 초반의 중국 송나라 수도 카이펑에서 시작해 20세기 미국 뉴욕 지도까지 거의 800여년에 걸쳐있다.
저자는 사진 같이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지도를 통해 장소, 길, 건축물, 주택 등과 함께 도시의 기원과 성장 및 변화를 이야기한다. 스토리텔링은 도시와 건축은 물론, 미술사, 지리학, 역사 등이 전방위로 망라된다. 책에서 제시된 도시의 그림은 대표작 15장을 포함해서 무려 450여장이다. 그리고 나서 저자는 “이렇게 열다섯 도시를 다 읽고 나면 동서양의 도시문명을 비교론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다”면서 이 책을 인류가 이룬 “도시문명의 만화경(만 가지 빛깔의 거울)”이라고 설명한다.
대표 사례로 1739년 제작된 프랑스 파리의 ‘튀르고 지도’가 제시된다. 18세기까지 파리는 여전하고 혼잡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바뀐다. 국력을 강화하고 이를 홍보할 목적으로 근대도시로 정비된다. 반듯한 도로를 뚫고 아파트 위주의 주택과 상업시설을 만들었다. 공원도 대폭 확대했다. 현대 파리의 원형이 놓인 것이 이 시기다. 그리고 이의 성과를 바탕으로 정교한 그림지도가 만들어진다. ‘튀르고 지도’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을 기획하고 제작비를 댄 사람이 당시 파리 시장 미셸 에티엔 튀르고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파리를 그린 ‘튀르고 지도’는 정교하기가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하다. 지도를 만든 이유는 ‘잘 다스려지는 도시’이자 무엇보다 ‘근대도시’임을 만방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고 말한다.
영국 런던을 그린 1851년 제작 ‘열기구에서 본 런던’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지도는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세계 최초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런던 도시를 홍보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다만 런던의 모양은 파리와는 달리 불규칙성이 강한데 이는 도시개발에서 대토지 소유자들의 공공용지 제공이 부족했던 데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그려진 1962년 미국 뉴욕의 ‘뉴욕 조감 지도’는 또 다른 느낌이다. 뉴욕의 맨해튼을 나타낸 이 그림지도는 블록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둑판식 격자 무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구별 블록이 강제되는 상황에서 위로 건물을 계속 올리면서 현대 마천루 도시가 형성됐다.
1750년 중국의 베이징을 묘사한 ‘건륭경성전도’는 철저한 계획에 따라 꾸며진 사각형의 도시를 보여주고 이는 황제권을 강력함을 시사한다. 다만 현대에 들어와 성곽 등 전통적인 도시 구조들을 거의 파괴되고 껍질만 남은 아쉬움도 전한다. 중동의 경우는 앞서 다른 지역과는 결을 달리하는 데 1657년 이란의 당시 수도 이스파한을 묘사한 ‘이스파한 전경’을 통해 외적 방어에 유리하고 사회적 폐쇄성이 강한 이슬람식 도시를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19세기 초반 서울 서대문 부근을 보여주는 ‘경기감영도’가 제시됐다. 경기감영은 현재로 하면 경기도청 같은 건물로, 당시 서대문 바로 서쪽에 있었다. 당시 서울의 주택 모습이라든지 주민들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담겼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저자는 “그림지도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성행했는데 주로 도시를 홍보하려는 목적에서 그렸고 당시 권력자들의 뒷받침을 받는 지도제작자의 현실 미화와 변화에 대한 동경이 담겼다”면서 “18세기에 접어들면 관광을 위한 지도가 성행하면서 도시의 특징을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3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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