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이를 개발해 보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나라로 우리나라와 일본이 꼽힌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일본 모두 원자력발전소와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을 갖고 있는 데다 빠른 시일 내에 기폭 장치와 투발 수단도 확보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입장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국방·외교부 업무 보고에서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정부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이 직접 핵무장 카드에 꺼낸 데 대해 “일차적으로는 북한·중국에 대한 경고, 그리고 미국에 대해서는 핵 공유 등에 대한 압박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발언해 향후 행보에 여러 포석을 깔아뒀다는 것이다.
비공식적으로는 대통령실도 같은 입장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12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자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차원이 다른 대응에 나서겠다는 경고다.
주목할 것은 핵과 관련된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경선 토론회에서 ‘나토식 핵 공유’ 모델에 대해 “자체 핵무장은 비확산 체제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많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취임 이후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남발하자 입장이 바뀌고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여권에서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나오자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다가 전날 국방부 업무 보고에서는 “우리 과학기술로 가질 수 있다”며 처음으로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이 발언은 지난해 전술핵 재배치보다 한발 더 나아간 자체 핵무기 개발 옵션까지 꺼낸 것이다. 핵에 핵으로 대응하는 이른바 ‘공포의 균형’이다.
물론 대통령실은 공식적으로는 “대통령의 발언은 북핵의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이라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실효적으로 억제할 수 있도록 한미 간 확장 억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입장은 자체 핵무장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 힘든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자체 핵무장에 나서려면 북한처럼 NPT를 탈퇴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속칭 ‘핵클럽 가입’ 국가는 공식적으로 미국·러시아·중국·프랑스·영국 5개국뿐이다. NPT 체제의 공인을 받지 않고 핵무기를 개발하면 북한처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외교적·경제적 제재 및 군사적 압박을 받는다.
나아가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선택하면 핵우산을 제공하고 있는 동맹국 미국과의 신뢰 문제 또한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핵우산을 얻는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 못지않은 특권이다. 한국이 자체 핵무기 개발에 나서면 최우방국인 미국조차 믿지 못하고 독자 행보를 걷겠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도 “현실적으로 핵무장보다는 미국의 핵 자산을 공동 기획하고 운용하는 것이 북한에 훨씬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며 “자체 핵무장은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원론적인 입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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