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 인해 무고한 주변 분들까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돼 괴로운 마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자해 소동으로 치료를 받다가 한 달여 만인 지난 13일 법정으로 돌아온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남긴 말이다. 김 씨와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평소 인관관계를 유달리 중시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술을 사거나 용돈을 주는 일화도 심심찮게 들려온 터라 주위에서 그는 상당한 재력가로 통했다. 주 무대였던 서초동을 중심으로 김 씨가 법조·정치·언론인 등과 활발한 교류를 이어간다는 얘기는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이 터지기 전부터 알려진 내용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김 씨는 그간 쌓은 ‘거미줄 인맥’을 대장동 사업에 적극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로비의 핵심인 ‘50억 클럽’이 그렇고 최근 세간을 달구고 있는 언론·법조계 로비 정황이 여기에 해당한다.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김 씨를 ‘인허가 로비스트’, ‘검찰수사 무마 로비스트’라고 지칭했다.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 역시 2021년 10월 검찰에서 김 씨가 실행한 ‘법조인 로비’를 묻는 질문에 “판·검사들하고 수도 없이 골프를 치면서 100만 원씩 용돈도 줬다고 들었다. 골프 칠 때마다 500만 원씩 가지고 간다고 했고, 그 돈도 엄청 썼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러한 로비가 이뤄진 이유에 대해 남 변호사는 “제1공단 시행업자인 신흥프로퍼티파트너스주식회사가 공원화에 반대하면서 성남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막은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며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뒤집히지 않았으면, 대장동 개발 사업이 3년은 지연되었을 것“이라고 사법부 판결에 개입하려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김 씨와 금전 거래를 했던 언론사 간부들도 수사선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2020년 3월분 정영학 녹취록에서 ”너(정영학) 완전히 지금 운이 좋은 거야. 수사 안 받지, 언론 안 타지. 비용 좀 늘면 어때. 기자들 분양도 받아주고 돈도 주고. 회사에다 줄 필요 없어. 기자한테 주면 돼"라고 그간 금품 전달이 이어져왔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또 “김만배 방패가 튼튼해. 별명이 이지스함(최신종합무기 시스템을 탑재한 군함)이야. 김 이지스.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을 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라고 언론 관리에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련의 상황을 감안하면 대장동 로비 수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선 김 씨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한다. 다만 수사 협조로 방향을 튼 다른 대장동 일당과는 달리 김 씨만 입을 굳게 다물면서 수사가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 이에 검찰은 김 씨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 아닌, 그의 주변인을 샅샅이 살피는 방식의 수사를 전개해왔다. 측근인 화천대유 공동대표 이한성 씨와 이사 최우향(쌍방울그룹 전 부회장)씨에 대한 수사는 김 씨의 심리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김 씨의 자해가 이들의 체포 시점과 겹치는 게 그 이유다. 두 사람은 김 씨가 대장동 사업을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관리하면서 수감 중인 김 씨에게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고액권 수표는 소액권 수표로 순차 교환해 지급정지 등에 대비하는 등 (김 씨의)재산은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키겠다”는 각오가 담긴 보고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검찰 수사가 향후 김 씨와 엮인 법조·언론인들을 향하게 되면, 김 씨의 부담감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인들이 고초를 겪는다는 심리적 압박에 결국 김 씨가 검찰에 이번 사건의 최정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측과 관련된 진술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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