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표적인 핵무기 연구소가 미국의 규제에도 불구, 지난 2년 반 동안 다량의 미국 첨단 반도체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지정해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나, 이를 우회할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는 국영 중국공정물리연구원(CAEP)의 조달 문건을 검토한 결과 이 연구원이 2020년 이후 2년 반 동안 인텔과 엔비디아 등의 첨단 반도체를 최소 12번 이상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1950년대 설립된 CAEP는 중국 내 최고 핵무기 연구원들을 고용했으며, 이 곳에서 중국의 첫번째 수소 폭탄이 개발됐다. 미국은 이 때문에 1997년 CAEP를 수출통제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는데 막상 미국산 첨단 반도체 구매에는 큰 제약이 없었던 셈이다.
CAEP는 데이터 센터 구축 등에 활용되는 미국의 첨단 반도체들을 리셀러(재판매자)들을 통해 구매했다고 WSJ는 전했다. 이들 반도체 중 다수는 핵폭발 모델링을 포함한 광범위한 과학 분야에 사용되는 계산유체역학 연구를 위해, 일부는 전산시스템의 부품으로 각각 조달됐다. CAEP가 조달한 대부분의 반도체들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14㎚ 미만으로 중국 업체들이 대량 제조하기 어려운 제품이다.
특히 CAEP에서 발간한 연구 논문들을 분석한 결과 지난 10여 년간 최소 34건의 논문에서 미국산 반도체를 연구에 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핵 전문가들은 이 중에서 최고 7건의 연구가 핵무기 비축량 유지 등에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실은 미국산 반도체가 중국에서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 통제를 강화하는 바이든 정부에게 도전적인 문제라고 WSJ는 지적했다. 그레고리 엘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군과 이들의 방산업체들은 유령업체나 다른 수출통제 회피 전략을 통해 (미국 상무부의) 최종 사용자 제한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런 가운데 중국은 최근 몇년간 핵 전략을 증강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앞서 발표한 ‘중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중국의 핵탄두 비축량이 올해 400개 수준에서 2035년 1500개로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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