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만 새로 지으라는 것이냐. 지금 필요한 건 또 하나의 상급종합병원이 아니라 그동안 없었던 제대로 된 국가병원이다. "
국립중앙의료원(NMC) 신축·이전 사업 축소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NMC 근무 의사들이 31일 국회 앞에 모여 "기획재정부의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NMC 전문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NMC 현대화 사업 예산 삭감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코로나19 감염병과 같은 의료적 재난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수의료 대응을 제대로 하고,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지방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적정 진료를 제공하려면 본원과 중앙감염병원, 중앙외상센터를 포함해 총 1000병상 이상의 규모가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는 게 협의회의 주장이다. NMC 총동문회 조필자 회장도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해 병상 축소 반대에 힘을 보탰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NMC와 협의해 의료원 800병상·중앙감염병병원 150병상·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1050병상 운영에 필요한 사업비를 책정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본원 526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는 100병상 등 총 760병상 규모로 축소하고, 사업비도 기존 1조 2341억 원에서 1조 1726억 원으로 줄였다. NMC 이전 지역 인근에 대형병원이 여럿 있어 병상 과잉공급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NMC 의사들은 "기재부가 축소한 예산으론 미충족 필수의료 및 의료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고(故)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건립 사업에 5000억 원을 기부하며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은 데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음에도 사업 예산이 대폭 축소된 것으로 알려지며 의료계 안팎에서 비난 목소리가 높아지는 실정이다.
이날 이소희 NMC 전문의협의회장은 "그간 정부는 NMC 기능 강화를 통해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감염병, 외상 등 미충족 필수의료 분야 인프라를 마련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해 왔다"며 "본원 규모를 늘리지 않은 채 감염과 외상 병동만 추가로 얹는다고 미충족 필수의료 대응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본원에서 진료를 받는 고위험 감염병 환자에게 동반될 수 있는 혈액투석, 정신질환 등의 질환과 임산부, 소아 환자 등의 진료에 대응하려면 평소 그에 맞는 시설과 숙련된 의료 인력을 평소에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협의회에 따르면 해외 유수 감염병 병원들도 감염병을 지원하는 동시에 일정 규모 이상의 병상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 모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 탄톡생병원은 음압격리병상 330병상에 모병원 1720병상 규모를, 홍콩 감염병센터는 음압 격리병상 108병상에 모병원 1753병상을 유지 중이다. 독일 샤리떼 병원 역시 음압 격리병상 20개와 모병원 3001병상을 갖췄다.
이날 모인 전문의들은 축소된 NMC 현대화 사업 규모로는 의료취약계층에 대한 적정 의료제공도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부가 예산 축소 근거로 제시한 낮은 병상 이용률의 경우, 기존 인프라가 열악한 탓에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 때 기존 입원 환자들을 억지로 내보내 가며 감염병 대응을 하느라 왜곡된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협의회는 지난 25일부터 NMC 신축·이전 사업 축소를 반대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오는 3월부터 설계에 들어가려면 시간이 없는데 국민들이 너무 실상을 몰라 알려야 겠다는 생각에서다. 서명운동을 온라인으로 전환해 진행하면서 1만 명 목표를 달성하는 대로 대통령실 면담을 추진할 계획이다.
최안나 협의회 대변인(산부인과 전문의)은 “국가중앙병원은 민간이 하기 어렵고 지역에서 하기 어려운 것을 지원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며 최 대변인은 “이제라도 국민, 정부, 국회가 다시 한번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 바로잡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