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8일 위례·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8·28 전당대회에서 77.77%의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 대표가 된 지 5개월 되는 날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언급하며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숨 쉴 때 민주당은 가장 개혁적이고, 가장 민주적이고, 가장 강했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민주당은 개혁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심지어 강하지도 않다. 승복은 없고 투쟁만 외치며 민생은 내팽개친 채 방탄에 올인하는 ‘염치도, 실력도, 민주도 없는 기이한 당’으로 변질한 탓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치 인생을 통해 실천했던 ‘상식과 실력, 포용과 민주’로 상징되는 ‘민주당다움’을 잃었다는 뼈아픈 자성이 나온다.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윤석열 검사 독재 정권 규탄과 민생 파탄에 대한 국민보고대회를 이번 주말 서울에서 개최하겠다”며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윤석열 검사’라고 규정했다. 대선 불복이다. 더구나 이태원 참사 100일이 되는 5일을 하루 앞둔 4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추모대회가 열린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전국 지역 조직에 총동원령까지 내렸다고 하니 정상적인 공당(公黨)이라 할 수 있을까.
여론의 시선도 따갑다. YTN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2.19%포인트)를 보면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개인 비리 수사’라는 응답이 53%로 ‘야당 탄압용 정치 수사’라는 답변(33.8%)보다 높다. 지지율마저 열세다. 한국갤럽 1월 셋째 주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37%로 민주당(32%)보다 높았다. 최근 여론조사(알앤써치,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 ±3.1%포인트)에서도 국민의힘이 42.7%, 민주당이 41.4%를 얻었다. 민주당이 ‘이재명 지키기’에 당력을 쏟으며 ‘방 안의 코끼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사람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당의 위기가 당 차원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부 여당의 정책과 국정운영에 대해 건전한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할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면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민주당다움’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당은 위기 때마다 처절한 반성과 혁신을 통한 자정 기능이 작동하곤 했다. 2007년 12월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31만 표 차이로 완패한 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폐족(廢族) 선언’을 했다. 18대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26일에는 영하의 혹한에도 민주통합당 초선의원 20여 명이 국회 앞에서 ‘참회의 1000배’를 올렸다. 이들은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며 무릎을 꿇었다.
불행히도 지금은 상황이 더 나쁘다. 2021년 4·7재보궐선거에 이어 지난해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패했다.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까지 겹쳐 도덕성마저 내상을 입었다. 이런 가운데 비명계 의원들을 주축으로 한 ‘민주당의 길’이 최근 출범했고 친문 싱크탱크 ‘민주주의 4.0’과 정책포럼 ‘사의재’도 활동에 나섰다. 이제라도 ‘민주당다움’을 되찾기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통렬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치학자 애덤 프셰보르스키는 정당은 공익을 추구하는 좋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니라 사익을 탐하는 이기적 인간들의 군집이라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것은 경쟁과 선택 때문이다. 정당이 저마다의 열망과 비전을 시장 좌판에 진열하면 유권자는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시민을 대의하게 된다.
내년 4·10총선까지 14개월 남았다. 여야가 각각 좌판에 어떤 상품을 올려 놓고 유권자의 표심에 호소할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집권당다움’과 ‘민주당다움’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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