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업장의 준공이 대거 지연되는 등 시공사의 부실을 결국 신탁사가 부담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계에서는 부동산 개발 사업 자체가 더욱 침체기에 빠져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그간 신탁사의 책임준공관리형토지신탁에 힘입어 부동산 개발 사업이 급증해왔다면 앞으로는 이에 대한 대주단의 신뢰가 하락하면서 PF 대출 집행이 더욱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설명이다.
22일 ‘부동산 신탁사 기획 담당 임원회의 문건’에 따르면 올 1분기 말까지 준공이 예정된 부동산 신탁사의 사업장 중 234곳이 준공 지연 상태이며 이 가운데 손해배상책임이나 신탁계정에서의 회수 지연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이 89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발 사업 시 대형 건설사나 증권사들은 자체 보증으로 PF 자금을 조달하지만 중소형 건설사나 시행사의 사업의 경우 부동산 신탁사들의 책임준공을 통해 PF 자금을 받는다. 금융회사로 구성되는 대주단은 신탁사가 책임지고 준공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미분양 증가, 원자재 값 상승 등으로 중소 시공사와 시행사들이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못하면 신탁사들이 이를 떠안아야 한다.
이 같은 준공 지연 사례는 건축물의 종류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입수한 A신탁사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A신탁사가 책임준공관리형토지신탁으로 수주한 사업장 130곳 중 3개월 이상의 공정 지연 등의 문제가 나타난 사업장이 43곳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장은 서울과 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광주·경북·전남·전북·세종·충남·제주 등 전국에 소재했다. 건축물의 종류도 아파트와 근린생활시설, 생활형숙박시설, 도시형생활주택, 상업 시설, 업무 시설 등 다양했다. 다만 이들 중 일부는 사용 승인을 받는 등 준공을 완료한 상태다. 통상 신탁사의 책임준공 마감 기한은 준공 예정일로부터 6개월을 더한 기간이기 때문에 공정 지연이 반드시 신탁사의 책임준공 미이행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미이행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B신탁사의 상황도 좋지 않다. 이 신탁사는 ‘사천 엘크루 센텀포레’와 ‘기장역 엘크루 더퍼스트’ ‘부산 구서동 주상복합’ 등 사업장 3곳을 책임준공관리형토지신탁으로 수주했는데 이들 사업장의 시공사는 기업회생절차가 개시된 대우조선해양건설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기장역 엘크루 더퍼스트의 경우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3개월째 공정률이 30%이며 2021년 11월 분양한 사천 엘크루 센텀포레의 공정률도 지난해 말 기준 15%에 그쳤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대우조선해양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하고 있는 개발 사업의 사업 위험이 상승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A신탁사가 책임준공 사업장에 대해 결국 대위변제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PF 업계의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신탁사의 책임준공관리형토지신탁 상품은 2016년께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그간 미이행 사례는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신탁사는 경기도 수원 호매실에 지하 2층~지상 6층 근린생활시설을 짓는 사업에 대한 책임준공확약을 했다. 준공 예정일은 2021년 9월, 책임준공 마감 기한은 2022년 3월이었으나 기한 내 준공에 실패했고 지난해 2차례에 걸쳐 저축은행 4곳으로 구성된 PF 대주단에 86억 원 상당을 대위변제했다. A신탁사는 지난해 9월 이 사업장에 대한 공매를 진행했다. A신탁사의 한 관계자는 “준공까지 여유가 있었다면 시공사 대체 등으로 사업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당시 공정이 70% 이상 진행됐고 대출금 상환 기일이 임박한 상태였다”며 “대주와의 신뢰 관계를 고려해 대위변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사업장의 사업성과 분양성이 우수해 공매 절차를 진행해도 대출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지속적으로 수의 매각 및 공매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다수의 매각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 회사에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대주단의 PF 대출 집행이 더욱 보수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앞선 건의 경우 규모가 작은 데다 신탁사의 대위변제로 상황이 마무리됐지만 유사한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할 경우 신탁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수도 있어서다. PF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탁사가 변제에 부담을 느낄 경우 결국 손해배상 소송으로 이어질 텐데 이 경우 대주단의 자금 회수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신탁사의 책임준공확약에 대한 신뢰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신탁사의 책임준공은 중소·중견 시공사의 신용을 보강하기 위한 상품인데 대주단이 이를 신뢰하지 못하면 작은 시공사가 참여하는 사업을 검토조차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이미 은행 계열 신탁사의 책임준공 사업만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대주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준공 지연이 곧 신탁사 부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탁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89곳 모두 자체 관리가 가능한 범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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