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과 노란봉투법에 이어 또다시 입법 독주에 나섰다. 재정 악화 등을 감안해 반대하는 정부 여당의 만류를 물리치고 ‘취업 후 상환 학자금대출(ICL)’에 대한 무이자 혜택을 확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작 시급한 경제 법안들은 거야(巨野)에 발목이 잡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입법권을 틀어쥔 민주당의 정부 여당 길들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22일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ICL은 차입자가 학자금대출의 원리금을 졸업 후 소득이 생겼을 때 갚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올해 상반기 기준 1.7%의 대출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상환 개시 전과 상환 중 폐업·실직·육아휴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진 경우 해당 기간 동안의 이자를 아예 면제하는 내용을 이번 개정안에 담았다.
정부와 여당은 재정 부담과 더불어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대했다. 무이자로 전환 시 10년간 추가로 소요되는 재정 규모가 최대 83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계되는 데다 불필요한 대출 남발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전체 인원(7명)의 과반(4명)을 차지하는 야당은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당은 이에 반발하며 회의장을 퇴장했다. 전체회의에서도 상임위원의 5분의 3을 민주당(민형배 무소속 의원 포함)이 차지하고 있어 단독 의결이 가능하다.
반면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의 일환으로 추진된 ‘공급망 안정화 3법’ 중 공급망안정화기본법과 자원안보특별법은 수개월째 표류 중이다. 전날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전문가들은 공급망 위기 관리의 시급성을 지적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부처별 관련 특별법이 많이 있어 옥상옥이 될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해 말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자원안보특별법은 의견 조율이 안 돼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도 못했다.
반도체 기업의 투자세액공제를 확대하는 ‘K칩스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난달 투자세액 기본공제율을 대·중소기업은 현행 8%에서 15%로, 중소기업은 16%에서 25%로 상향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국회 기재위 심사는 공전하고 있다. 야당이 ‘대기업 특혜’ 등을 이유로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치면서다. 결국 2월 국회 내 처리도 어렵게 됐다.
여당은 이날 열린 기재위 전체회의에서도 야당에 법안 처리 협조를 촉구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투자 촉진을 위한 세제 지원 확대, 재정준칙의 법제화, 공급망기본법 제정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법안들이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에 양경숙 민주당 의원은 “(난방비) 지원책 마련에는 고민하겠다는 말만 하면서 재벌·대기업 지원에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왜 이렇게 많은 지원을 하려고 난리를 피우냐”고 말했다.
민주당의 이러한 입법 독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확대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하려는 전략이라는 게 여당의 분석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취업후학자금상환특별법·양곡관리법 등은 국가재정을 축내는 선심성 포퓰리즘”이라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에 해당 법안 수혜 대상자들이 반발해 여당에 등을 돌리도록 하는 것이 민주당의 계획인데 (여권으로서도) 거부권 외에는 막을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여야 대치가 내년 총선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주당이 겉으로는 민생을 강조하지만 이재명 대표 사법 문제에 매달리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고 국민의힘 역시 당권 경쟁으로 입법 활동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고 이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정리되더라도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여야 대립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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