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침입 강제추행죄’를 집행유예 선고가 불가능한 징역 7년 이상으로 처벌하도록 한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경미한 사안까지 엄벌에 처할 경우 ‘책임주의’에 반한다는 의미로 입법권자가 법관의 재량권을 지나치게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국회가 ‘특수강도강간죄’와 혼동해 하한을 상향한 사실도 드러났다.
헌재는 23일 ‘성폭력처벌법 제3조 제1항’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전주지법 등 전국 일선 법원 재판부 25곳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과 피고인 7명의 헌법소원을 병합 심리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들은 “심판대상조항은 법정형의 ‘상한’을 무기징역으로 높게 규정함으로써 불법과 책임이 중대한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형의 ‘하한’을 일률적으로 높게 책정해 경미한 경우까지 모두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책임주의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성폭력처벌법 제3조 제1항은 주거침입 강제추행죄 및 주거침입 준강제추행죄에 대해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2020년 5월 개정된 것으로 법정형 하한이 5년 이상의 징역에서 상향됐다. 이는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준강간죄’ 및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유사강간·준유사강간죄’에 규정된 법정형의 하한과 같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주거침입과 함께 행해진 강제추행 또는 준강제추행의 경우에는 불법과 책임의 정도가 아무리 경미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없다.
헌법재판관들은 “성폭력처벌법에서 규정한 주거침입 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의 경우 다양한 추행 행위 중 그 불법과 책임의 정도가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더라도 재범 예방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며 “개별 사건에서 법관 양형은 재범 예방을 위한 다양한 제도까지 두루 고려해 행위자의 책임에 걸맞게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관의 양형 재량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헌법재판관들은 “법관에게 양형 재량을 부여한 취지는 개별 사건에서 범죄행위자의 책임에 상응하는 형벌을 부과하도록 해 형벌개별화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이는 실질적으로 형벌이 획일화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법관의 양형을 전제로 하는 법정형의 기능이 상실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헌재 심리 과정에서 과거 법 개정 과정에서 국회의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국회 회의록 등에 따르면 성폭력처벌법 제3조 제1항이 아니라 제2항의 ‘특수강도강간죄’와 혼동해 제대로 된 논의 없이 법정형을 상향했다는 것이다. 이선애 재판관은 개별의견을 통해 “심판대상조항은 입법 과정에서 죄질이 다른 성폭력범죄와의 혼동으로 인해 그 심의를 누락한 채 집행유예의 가능성을 축소한 중대한 오류가 존재한다”고 꼬집었다.
법조계에서도 국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성범죄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당시 ‘주거침입 강제추행’ 사건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입법을 졸속으로 한 것”이라며 “여론에 이끌려서 입법을 하게 되면 이런 사태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 전문위원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시각에서 내린 결론이라는 점에서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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