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주도해 유관순 열사와 함께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여성 독립운동가 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 선생이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28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권애라·심영식·신관빈·임명애 선생은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3·1운동에 참여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여성 독립유공자다. 유관순 열사와는 서대문감옥 여옥사 8호 감방의 ‘동지’기도 하다.
경기 강화(현 인천광역시) 출생인 권애라(1897~1973년) 선생은 이화학당 졸업 후 호수돈여학교 부설 유치원 교사로 재직할 당시인 1919년 3월 1일 예배당에 숨겨둔 독립선언서를 꺼내 심영식·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배포하고 학생들과 만세 시위를 준비했다. 이틀 후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며 개성 최초의 만세 시위가 일어났다. 선생은 독립선언서 배포 혐의로 체포됐으며 그해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7월 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개성 출생인 심영식(1896~1983년) 선생은 1919년 3월 1일 권애라·신관빈 선생 등과 함께 개성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한 후 3월 4일 개성의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같은 해 5월 징역 10월 형을 받아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선생은 이듬해 3월 1일, 3·1운동 1주년을 맞아 개성 미리흠여학교 학생들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다가 체포돼 다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6개월의 수감 생활을 했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던 신관빈(1886~?년) 선생도 1919년 3월 1일 권애라·심영식 선생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배포했다. 선생은 이튿날 교회에서 체포됐고 다음 달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아 서대문감옥에 투옥됐다.
경기 파주에서 태어난 임명애(1886~1938년) 선생은 1919년 3월 10일 파주군 교하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1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이는 파주의 첫 만세 시위로 기록됐다. 선생은 현장에서 체포돼 1919년 6월 징역 1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앞서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권애라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심영식·신관빈 선생에게 각각 1990년과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임명애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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