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총선을 10개월가량 앞두고 혁신적인 당헌 개정안을 내놓았다.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한다’고 규정한 당헌 80조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당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만든 이 조항은 대표적인 개혁 방안으로 받아들여졌고 20대 총선 승리를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
한때 민주당이 자랑하던 당헌 80조가 요즘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한 ‘방패막이’로 변질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이 22일 이 대표를 위례·대장동 특혜 개발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으로 기소하자 민주당은 불과 7시간 후에 당무위원회를 열어 이 대표의 당직 유지를 결의했다. ‘정치 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예외를 규정한 당헌 80조 3항을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비명계에서는 “당헌이 누더기가 됐다” “깨끗한 정당을 위한 조치가 무력화됐다” 등의 반발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이 공직 선거에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한 ‘당헌 96조’를 고쳐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다가 참패했던 일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당시처럼 민주당이 ‘당헌 80조’로 부메랑을 맞아 자칫 자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민주당을 탓할 처지는 못 된다. 지난해 국민의힘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요건을 규정한 당헌 96조를 고쳐 이준석 전 대표를 축출하는 과정에서 심한 내홍을 겪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대통령실의 입김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당 대표 선출 방식을 규정한 당헌 26조를 고쳤다.
2년 전 문 전 대통령은 “당헌도 고정불변일 수 없다”며 당헌 96조 개정을 감쌌다. 상황 논리에 따라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눈앞의 정치적 이득을 좇는 것은 정치인의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신뢰를 훼손하는 정치가 선거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은 고정불변의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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