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화관무’ 이후 600편의 창작춤을 선보이며 한국 신무용의 대모(代母)로 불린 원로 무용가 김백봉이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고인은 20세기 한국무용을 대표하는 전설적 무용가 최승희의 제자이자 동서다. 최승희의 월북 이후 한국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끈 산증인으로 평가된다.
1927년 평양에서 태어나 14세던 1941년 일본 도쿄에 있는 최승희무용연구소 문하생으로 들어가 이듬해 무용수로 데뷔했다. 1944년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 안제승과 결혼한 후 1946년 평양에서 최승희와 함께 최승희무용단 제1무용수 겸 부소장,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1950년 남편과 함께 월남한 고인은 1953년 서울에서 김백봉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부채춤을 비롯해 다양한 창작무용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 신무용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특히 고인은 ‘장고춤’ ‘심청’ ‘만다라’ 등 600여 편의 창작춤을 선보였는데 그중 ‘부채춤’과 ‘화관무’는 대표작으로 꼽힌다. 1954년 첫선을 보인 ‘부채춤’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군무로 선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 때 2000여 명의 군무로 선보인 ‘화관무’는 전 세계에 한국 군무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작품으로 꼽힌다.
30년간 경희대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한국종합예술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서울시무용단 단장 등을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1982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으며 서울시 문화상, 캄보디아 문화훈장, 대한민국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1999년에는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됐다. 1995년에는 김백봉춤보전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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