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범죄 사건을 작품에 녹이는 작업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상호 작가의 신념은 확고했다. 이런 풍자와 해학이 꾸준히 등장해야 부조리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한 모범택시의 운행은 계속된다.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2'(극본 오상호/연출 이단)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이다. 작품은 방송 내내 10%(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상의 시청률을 유지하다가 마지막 회 최고 시청률 21%를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시즌1 때 시청자분들이 보여주신 관심과 응원이 있었기에 시즌2가 만들어질 수 있었어요. 시즌2도 많이 사랑해 주셔서 그저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오 작가가 생각한 '모범택시' 시리즈는 우리 시대의 우화다. 현실을 풍자하고 해학을 보여주는 게 부조리에 대항하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범죄오락 장르인 만큼, 장르물로서의 미덕을 살리면서 '겉돌지 말자'는 기준을 정해두고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매 에피소드마다 어느 정도까지 찌르고 들어가는 게 최선인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시즌2는 시즌1에 비해 김도기의 다양한 부캐 플레이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오 작가는 이제훈의 고민과 노력이 만든 부캐들을 보면서 감탄했다고 떠올렸다. 이제훈 외에도 노인으로 분한 김의성, 신혼커플로 큰 매력을 발산한 표예진, 순백교도로 위장한 배유람, 법사 도우미로 꾸며 활약했던 장혁진까지 팀원의 부캐 플레이는 화려했다.
"부족했던 대본의 빈 부분을 넘치게 채워주셨어요.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요. 작품을 보며 항상 감탄했던 건, 오프닝에 무지개 식구들이 일렬로 나올 때와 시골에서 모든 멤버들이 현장에 투입돼 활약할 때, 그리고 의료사고 에피소드에서 모든 멤버들이 병원에 잠입해 들어올 때예요. 5명이 하나가 돼서 걸어올 때마다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모범택시2'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기억이다. '기억해야 되찾을 수 있는 게 있다'는 대사는 작품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주요 메시지다. 오 작가는 이 메시지를 놓고, 사람들이 한편에 묻어두고 넘어갔던 사건들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써 내려갔다.
기억에 대한 메시지가 집합적으로 들어간 캐릭터는 온하준(신재하)이다. 기억을 잃고 보육원에 맡겨진 온하준은 범죄 조직의 일인자 교구장(박호산) 손에서 범죄 조직원으로 자란다. 온하준은 기억해야 될 과거가 있다는 걸 깨닫고, 교구장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한다.
관련기사
"온하준은 복잡하고도 단순한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만이 정답이라는 방식으로 길러진 아이, 그 안에 뭔가 소중한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막연한 공허함을 가진 캐릭터죠. 이런 캐릭터를 통해 무지개 택시를 추격하는 의문의 세력, 그리고 시즌2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기억해야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자 했어요. 신재하가 가진 선악을 오가는 얼굴과 눈빛이 온하준을 완성시켰어요."
작품은 버닝썬, 사이비종교, 부동산사기, 노인사기, 해외취업사기 등 실제 사건에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중 사이비 종교 사건은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와 맞물리며 큰 화제를 모았고, 버닝썬은 공교롭게 다시 화제가 될 때 등장해 놀라움을 안겼다.
"방송 전 고지 멘트처럼, '모범택시2'는 드라마고 우화예요. 그런데 만약 어떤 사건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깝고 무서운 일이죠. 타이밍에 대해서는 사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었는데, 또 한 편 생각해 보면 이 범죄가 반복적으로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거잖아요. 사이비 종교 에피소드를 집필하면서, 저는 믿음을 이용해 흥한 자 그 믿음 때문에 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 법사 도기를 통해서요."
'모범택시'는 시즌3 제작 논의 중이다. 이에 대해 오 작가는 "무지개 운수 다섯 명이 없는 모범택시는 상상하기 힘들다. 반대로 이 다섯 명이 함께라면 더없이 즐거운 작업이 될 것"이라며 "무지개 운수 식구들이 다시 가자고 하면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할 것 같다"고 기쁨을 표했다.
"'법대로 해'라는 말이 가해자들의 무기로 쓰이고, 피해자들에게 협박 수단으로 쓰이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모범택시의 운행은 계속돼야 한다. 죽지 말고 전화하세요. 우리는 당신의 억울함을 듣고 싶습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