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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작가가 꼽은 사랑의 불시착이 전 세계 시청자 울린 이유

스탠퍼드 아시아태평양연구소서

'한류의 미래' 주제로 강연

우리나라 시청자의 높은 스탠더드 맞춘 작품은

해외에서도 좋은 성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으로 잘 알려진 박지은(왼쪽 두 번째) 작가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한류의 미래(The Future of Hallyu) 콘퍼런스에서 K드라마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탠퍼드대




"너는 어리니까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고생을 다 하고 30대 이후부터 드라마 작가를 해도 늦지 않단다."

대학 시절 유명 드라마 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박지은 작가가 들었던 조언이었다. 어릴 때부터 드라마광이었고 어서 빨리 드라마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순간이었다. '조급해하지 말고 최대한 많은 고생을 해볼 것.'

이후 모든 경험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박 작가는 “당시 말 안 듣는 중학생 과외를 하던 시절이라 힘들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며 “이렇게까지 말 안 듣는 아이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까. 다음에 드라마에 꼭 써야지 싶었다”고 전했다.

19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APARC)에서 열린 컨퍼런스 ‘한류의 미래(The Future of Hallyu)에서 대담을 한 박 작가는 K-드라마가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게 된 이유로 우리나라 시청자층의 높은 수준을 꼽았다.

이날 박 작가가 소개한 드라마 작가로서의 여정은 한류가 성장하는 시기에 함께 이뤄졌다. 그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전 진로로 정했던 광고 회사 취업이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물거품이 됐다. 그렇게 프리랜서 시사 고발 프로그램 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파트 관리비의 비리, 공장 폐수 등 여러 사회 문제를 취재했다. 이후 그가 맡게 된 일은 시트콤 작가였다. 당시 주 5회씩 방영되는 일일 시트콤을 담당하는 작가는 단 5명. 일주일에 한 명이 반드시 하나의 에피소드를 책임져야 하는 구조였다. 월요일 아이템 회의, 화요일 시놉시스 회의, 수요일에는 이를 바탕으로 시놉시스를 쓰고 목~금요일에는 대본을 쓰고 토요일 아침에 수정을 해서 넘기고 다시 월요일 아이템 회의를 준비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10년 간 각종 프로그램을 맡으며 드라마 빼고 모든 장르를 해봤다.

박 작가가 드라마 작가로 입봉하는 계기도 순탄하지 않았다. 2008년 일년 간 준비했던 작품이 방송국의 편성 심사를 통과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방송사가 긴축 재정을 하면서 편성 시간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제작사에서 제 작업실을 매물로 내놨고 사람들이 방을 보러왔다"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와중에도 계속 대본을 쓰는 일이었다"고 술회했다.

다음 해 결국 그에게 기회가 왔고 그동안 쉬지 않고 써놓은 대본은 빛을 발하게 됐다. 바로 31.7%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일으킨 MBC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었다. 이후 주말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2012)으로 국민 작가로 등극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열풍을 일으킨 미니시리즈 '별에서 온 그대(2013)'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 같은 성공을 경험한 베테랑 작가에게도 드라마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온 드라마가 있다. 2016년 국내에 상륙한 넷플릭스라는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가 지역별 방영 시기를 극적으로 줄였고 동시간 시청층을 순식간에 전세계로 넓혔다. 이후에 나온 드라마들은 기획 단계부터 글로벌 시청자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박 작가가 택한 아이템은 남북한 분단 상황에 만난 남녀의 애틋한 로맨스물이었다. '아직 해외에는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분단이라는 정서는 우리나라 사람들 외에는 이해할 수 없다' 등 많은 의견들을 접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글로벌 시청자층을 만족시키는 건 둘째로 치고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데만 전념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온 '사랑의 불시착(Crash Landing on You)'는 2020년 넷플릭스 미국 론칭과 동시에 많이 본 콘텐츠 6위를 기록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등으로 잘 알려진 박지은(왼쪽) 작가가 19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한류의 미래(The Future of Hallyu) 콘퍼런스에서 K드라마의 인기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탠퍼드대


어느 날 미국 뉴욕으로 향했던 박 작가는 입국 심사대에서 무슨 작품을 썼느냐는 질문에 사랑의 불시착을 말하자 무표정했던 직원의 표정이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바뀌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당신이 진짜 썼다고?”하는 질문에 오히려 반문했다. “진짜로 봤다고?”

그는 사랑의 불시착의 흥행 요인을 두고 “기존에 남북한을 다룬 드라마가 남북한의 관계에 집중했다면 북한의 자잘한 일상을 다루는 장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일으킨 것 같다”고 짚었다. 또 그는 “이 드라마는 그리움의 정서를 다룬 드라마”라며 “디테일은 낯설어도 사람들이 보물찾기 하듯이 보편성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디테일에도 힘을 썼다. 드라마 설정상 북한말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북한말에서 재미 포인트를 구사하기 위해 북한 출신의 영화감독을 보조작가로 영입해 한달 넘게 함께 생활하며 그의 모든 말들을 적었다. 이중에 재밌게 느껴지는 단어나 문장은 따로 낱말 카드에 모아서 기록했다. 에피소드 조사를 위해 만난 탈북민만 50명이 넘는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함께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사전 제작 시스템 확산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대본을 써가는 일이 사라진 점으로 꼽았다. 그는 “이전에는 드라마 작업이 훨씬 힘든 환경에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동시간에 호흡하는 느낌이 있었다”며 “그 점이 사라진 게 유일한 아쉬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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