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지난 1~3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 뮤지컬 ‘베토벤; Beethoven Secret’의 첫 번째 시즌에 내놓은 관객들의 평가다. 박효신과 옥주현이라는 시장에서 가장 몸값 높은 배우를 영입하고, 업계 최고로 소문난 연출, 음악감독까지 모셨지만 7년에 걸친 제작기간이 무안할 정도로 관객들의 평가는 야박했다. 스토리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세기의 음악가 베토벤을 ‘청력을 잃고도 사랑만 찾는 남자’로 그렸다. 그리고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은 ‘불멸의 사랑’이 아닌 ‘불륜’으로 저평가 됐다.
그리고 지난 11일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 ‘베토벤’의 두 번째 시즌이 개막했다. 제작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주. 짦은 시간이지만 ‘EMK뮤지컬컴퍼니’는 ‘뮤지컬계의 대기업'이라 불릴 만한 담대한 추진력으로 넘버를 추가하고 빼고, 캐릭터까지 바꿔가며 관객의 평가를 작품에 적극 반영한 결과물을 내놨다.
뮤지컬 ‘베토벤’의 기본 줄거리는 그의 유품 중 신원 미상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제작진은 세 명의 아이가 있는 귀족 여인 ‘안토니 브렌타노’를 상상해 베토벤과 러브스토리를 만든다. 시즌1에서는 큰 줄거리를 듣고도 고개를 갸웃할 만한 대목이 많았다. 베토벤이 청력을 잃게 될 것이란 선고를 받았는데도 고뇌하는 장면이 거의 생략되고, 돌연 ‘이 위기를 이겨내겠다’며 활기를 되찾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작곡가가 듣지 못하게 됐는데 이렇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느냐’라는 혹평이 나온 이유다. 시즌2에서 제작진은 ‘절벽의 끝’ 등 세 곡의 넘버를 추가한다. 이를 통해 베토벤이 그토록 몰입하던 ‘음악’에서 한 걸음 물러나 ‘사랑’이라는 감정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수정판에서는 베토벤과 사랑에 빠진 귀족 부인 ‘토니’도 ‘불륜녀’라는 불명예에서 다소 벗어난다. 지난 시즌 토니의 남편 프란츠는 일에 몰입해 가정을 등한시하는 캐릭터이지만 이런 이유로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과 사랑에 빠지는 설정은 국내 관객이 납득하기 쉽지 않은 스토리였다. 제작사는 새로운 시즌의 프란츠를 아내와 가족에게 강압적이고 독선적이다. 또한 여배우와 밀회를 즐기는 나쁜 남편이기도 하다. 토니와 베토벤의 사랑이 ‘불륜’이 아닌 ‘불명의 사랑’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스토리의 개연성이 더해지자 시즌1에서 거의 유일한 장점이던 배우들의 열연이 더욱 빛을 발했다. 작고 여린 체구의 조정은 배우는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날 때마다 웅장하고 거대해진다. 체코 프라하의 명소 카를 다리 위에 서서 삶을 고뇌하는 배우의 모습에서 ‘나는 나만의 것’을 부르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엘리자벳’ 속 배우의 모습이 겹쳐졌다.
여전히 100점은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편곡해 만든 작품이긴 하지만 그간 EMK의 모든 다른 호평을 받은 대작과 달리 기억에 남을 만한 넘버는 없었다. 대중이 잘 알고 있는 베토벤의 곡 자체가 ‘킬링 넘버’가 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데도 이를 잘 살려내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또한 일부 넘버를 빼고 더했는데도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의 슬픔과 좌절이 여전히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창작 뮤지컬이 시즌을 더해가며 성장하는 기분 좋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베토벤’의 다음 시즌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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