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통신사 SK텔레콤의 해킹에 따른 가입자 정보 유출 사고 여파가 계속 커지고 있다. 회사 측에서는 유심(USIM) 관련 일부 정보 유출 가능성만 거론했지만 가입자들은 유심 교체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하거나 방문한 대리점의 유심 재고 부족으로 하루 종일 혼란과 불편을 겪었다. 부산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휴대폰이 개통되고 계좌에서 5000만 원이 이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이 실제로 이번 사건으로 인한 것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사고가 터진 후 기업의 안일한 대응으로 불신이 깊어진 소비자들의 불안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8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이달 24일 부산에 사는 60대 남성이 이 같은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를 접수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이달 22일 본래 사용하던 SK텔레콤 휴대폰이 갑자기 먹통이 돼 통신사를 방문했고, 이후 본인 명의의 또 다른 휴대폰이 KT에서 개통되면서 본래 사용하던 휴대폰이 정지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본인 계좌에서 5000만 원이 모르는 사람의 계좌로 이체됐다고도 주장했다.
SK텔레콤은 “기존 회선을 해지하고 새로운 회선을 개통 하려면 이름·생년월일·주소 등의 정보가 필요한데 이번 유출 의혹을 갖고 있는 유심 일부 정보로는 그러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며 해당 사건이 이번 사고와 무관하다고 했다. 경찰 역시 이날 “현재까지 (해킹 사건 관련) 금전 피해는 접수된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도 당장 유심 교체를 하지 못한 SK텔레콤 이용자들의 불안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날부터 2300만 가입자 전체를 대상으로 무상으로 유심을 교체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SK텔레콤이 확보한 유심은 100만 개에 불과하다. 5월까지 확보 가능한 물량도 500만 개 정도다. 전체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런 이유로 지난 주말부터 SK텔레콤 매장 앞에는 수백 명의 고객들이 유심 교체를 위해 ‘오픈런’을 하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편의점 알뜰폰용 유심칩 판매 또한 급증했다. 국내의 한 대형 편의점 관계자는 “이달 22~27일 알뜰폰 유심칩 판매율이 15~20일 대비 147.8% 늘었다”고 밝혔다.
유심을 교체하기 전까지 고객들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유심 보호 서비스’가 유일하다. SK텔레콤은 이달 18일 해킹 사고가 발생한 직후 지속적으로 고객들에게 이 서비스에 가입할 것을 독려했다. 하지만 현재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유심 보호 서비스는 무용지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상황이다. 27일 기준 해당 서비스 가입자는 554만 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24% 정도에 불과하다. 이용자들이 유심 보호 서비스를 외면하는 가장 큰 이유는 SK텔레콤이 고객들에게 서비스 가입 필요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이 크다. SK텔레콤은 이달 18일 해킹이 발생했다는 정황을 인지한 후에도 홈페이지를 통해 ‘유심 보호 서비스’에 가입하라는 공지만 띄웠을 뿐 사실상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개별 공지가 없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고객이 많다는 논란이 확대되자 뒤늦게 전체 고객에게 순차적으로 문자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후 열흘이 다 돼가는 지금도 유심 보호 서비스 안내 문자를 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SK텔레콤이 돌연 유심 교체를 해주겠다고 나서자 많은 이용자들이 해당 서비스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확보한 유심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유심 보호 서비스를 외면하면 실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고객들은 자체 해결책을 찾고 있다. 우선 경찰이 업무용 스마트폰 2만여대 중 SK텔레콤 통신사 유심 2400여개를 전량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유심 교체에 앞서 유심보호서비스 가입부터 완료했다. 금융권은 SK텔레콤 가입자를 대상으로 금융거래 인증 절차를 강화했다. 신한은행은 28일부터 SK텔레콤 가입자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 반드시 안면 인식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하나은행은 이용자가 기존에 등록한 휴대폰이 아닌 다른 기기로 앱에 접속해 송금을 시도할 경우 직접 전화를 걸어 이상거래 여부를 점검한다. KB캐피탈은 아예 SK텔레콤 가입자가 자사 앱 로그인 시 휴대폰 인증 방식을 활용할 수 없다고 공지했으며, NH농협생명도 SK텔레콤에 대한 본인 인증 서비스를 상황 종료 시까지 제한하기로 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SK텔레콤은 이날 임직원을 대상으로 ‘사이버 침해 사고 관련 설명회’를 열고 ‘소프트웨어 초기화’라는 새로운 방안을 발표했다. 소프트웨어를 초기화하면 새 유심으로 교체하지 않고도 개인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어 소비자의 시간과 기업의 비용 등을 줄일 수 있다. 김형중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석좌교수는 “이용자들이 불안해하고 있고 유심 교체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소프트웨어로 해결을 하는 방법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며 “소프트웨어 초기화를 하고도 여전히 불안하다면 그때 가서 유심을 교체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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