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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에 日가네코 후미코·후세 다쓰지 선정

일본인이지만 대한민국 독립 위해 헌신

가네코 후미코 선생/사진=국가보훈처




일본인이지만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후세 다쓰지(布施辰治) 선생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30일 국가보훈처는 “(이들은) 일본인으로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대한민국을 사랑한 독립유공자”라며 이 같이 밝혔다. 가네코 후미코 선생은 1903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이 만든 ‘흑도회(黑濤會)’에 몸담으며 노동자 후원과 친일파 응징 활동 등 항일운동을 펼쳤다.

가네코 선생은 1923년 관동대지진 후 일본의 조선인 학살 과정에서 남편과 함께 연행됐다가 박 의사의 폭탄구입 계획이 드러나 사형 판결을 받았다. 1926년 2월 도쿄 대심원 법정 공판에서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자신의 이름은 ‘박문자’라고 밝힌 선생은 사형 판결 직후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그는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옥살이 도중인 1926년 7월 의문의 죽음을 맞았고, 유해는 남편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 묻혔다. 고인은 옥사한 지 92년 만인 2018년 독립유공자로 인정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후세 다쓰지 선생/사진=국가보훈처


5월의 독립운동가에 함께 선정된 후세 다쓰지 선생은 훗날 ‘일본의 쉰들러’로 불린 인권변호사다. 1879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한 그는 1919년 ‘2·8독립선언’에 참여했던 재일조선인 유학생들과 ‘국가 전복 모의’ 혐의를 받은 박열·가네코 부부를 변론을 맡았다. 가네코 선생의 유해를 거둬 한국으로 운구한 것도 그였다.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가리지 않고 정의의 편에 섰던 그는 1932년 법정 모독으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1933년에는 신문지법, 우편법 위반으로 금고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일제 패망 후 다시 변호사로 활동한 선생은 새로운 평화헌법 보급과 재일조선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투쟁에 매진하다 1953년 서거했다. 정부는 그에게 200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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