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디젤(경유)과 휘발유 수요가 감소하면서 경기 침체 두려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 산유국들이 추가 감산을 시작했음에도 유가는 하루 만에 5% 넘게 빠졌다.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가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경기 회복세도 더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현지시간) S&P글로벌 자료를 인용해 올해 1분기 디젤을 포함한 증류유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증류유 선물 가격은 갤런당 2.275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하락했으며 2021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디젤은 화물 운송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연료로, 디젤 수요가 감소했다는 것은 곧 산업 생산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종이·목재·금속 등 다양한 분야의 생산은 올 들어 5~11% 줄었다.
트럭 운송 기업인 JB헌트의 셸리 심슨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간단히 말해 우리는 회물 경기 침체에 처해 있다"고 말했고 캐롤 톰 UPS 대표도 소매 경기 침체를 지적하면서 "운송량이 계속해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반 소비자들의 지출 동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휘발유 판매량도 심상치 않다. 에너지정보 제공업체 OPIS에 따르면 미국 전역 4만 개 주유소에서 4월 16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간 판매된 휘발유 양은 전년 동기 대비 3%, 2021년 동기 대비 6% 줄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인 2019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는 감소폭이 20%에 달했다. 올해 1분기 휘발유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2% 감소하는 데 그쳐 증류유보다는 수요 둔화세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안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시장조사업체 커머디티컨텍스트의 로리 존스턴 대표는 "소비는 회복력이 있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비즈니스 쪽에서 수요 축소가 계속되면 이 현상이 결국 소비자 부문으로 확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증류유·휘발유보다 거시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유가 역시 하락세가 뚜렷하다. 전날부터 오펙 플러스가 하루 116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실시했음에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일 전장보다 5.29% 하락한 배럴당 71.66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종가는 3월 24일 이후 최저가다. 브렌트유도 전장 대비 5.03% 빠진 75.32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유가 하락세에 대해 FT는 "경기 침체 공포가 미국의 연료 수요를 억제했고 중국은 수요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말 발표된 중국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 지수(PMI)는 49.2로 4개월 만에 50을 하회했다. 이 수치가 50을 하회하면 경기축소를 의미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