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문은 비둘기였지만 기자회견은 매였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수석미국이코노미스트 애나 웡은 3일(현지 시간)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5월 통화정책 발표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기자회견에 앞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문이 공개됐을 때만 하더라도 뉴욕 증시는 상승했다.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는 것은 시장의 예상 범위였고 성명문에서 ‘추가적인 (긴축) 정책 공고화가 적절할 것으로 예상한다’는 기존 문구가 사라지며 금리 인상 중단 신호가 나온 것도 시장이 기대하던 대로였다.
월가의 표정이 굳어진 것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 중 연내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 가능성을 일축한 대목이었다. 파월 의장은 “연내 기준금리 인하는 우리의 전망에 없다”고 말했다. 이 발언 뒤 내리기 시작한 다우존스30평균지수는 기자회견 이후 300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월가가 우려하는 대목은 연준의 고금리 유지 기조가 신용 리스크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다. 티로프라이스의 수석미국경제학자 블레리나 우루치는 “지난 12개월 동안 (연준이 고려해야 할 요인은) 인플레이션과 고용 성장 추이가 전부였지만 이제 보다 더 넓어졌다”며 “은행권의 스트레스와 신용 상황이 현재 더 중요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 역시 “인플레이션 지표, 임금, 경제성장률, 고용 시장 등의 데이터를 보고 있으며 현시점, 최근 6~7주간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신용 긴축”이라고 설명한 뒤 “신용 여건이 조여지면 경제에는 역풍이 될 것”이라며 신용 경색 가능성을 강조했다.
다만 그는 신용 긴축이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현시점에서 파악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수석경제학자 토르스텐 슬뢰크는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중요했던) 백미러를 보면서 그저 ‘은행 위기의 여파가 얼마나 될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 혼란에 따른 신용 경색이 깊어져 경제가 빠르게 얼어붙는 상황이 현실화하는 시점에서야 연준이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에 이날 FOMC 기자회견은 이후 경기가 침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대표는 “경기 침체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JP모건자산운용의 타이 후이 수석아시아시장전략가도 “향후 6~12개월 동안 침체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채권·상품 시장 역시 침체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날 10년물을 포함한 2년물 이상 미국 국채 수익률은 모두 하락했다. JP모건자산운용의 글로벌채권리서치 책임자인 캐이 허는 “시장은 연준이 침체로 설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국채 수익률은 더 떨어질 것”이라며 “위험자산에 대한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3.06달러(4.27%) 하락한 배럴당 68.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경기 둔화에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움직임이다.
이에 연준의 연내 금리 인하 전망은 오히려 파월 의장의 기자회견 이후 더 커지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툴에 따르면 7월 기준금리가 4.75~5.0%로 내려갈 확률은 전날 38.0%에서 현재 49.6%로 더 올라갔다.
반면 파월 의장은 연착륙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그는 “내 생각에는 경기 침체를 피하는 경우가 경기 침체를 겪는 경우보다 더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으며 온화한 경기 침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실업률이 상승하지 않으면서 일자리 수가 줄고 있다는 점을 연착륙이 가능한 근거로 제시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3월 개인소비지출이 4.2%로 전월(5.1%)보다 줄었지만 여전히 연준의 목표인 2%를 훌쩍 상회한다는 점 △실업자 한 명당 열린 일자리 수가 1.6개에 달한다는 점 때문에 금리를 높게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고용과 물가를 고려하면 2024년 1분기에 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