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뮤지컬 시장이 날로 커지면서 해외 뮤지컬 제작사가 작품의 글로벌 성패를 가늠하기 위한 ‘테스트베드’로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뮤지컬 제작사는 갈수록 높아지는 관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미국, 유럽 등지에서 기획된 작품을 미리 눈여겨 보고 초기 단계부터 투자와 제작에 관여하며 작품 라인업을 강화 시키는 모습이다.
지난 5일 개막한 뮤지컬 ‘나폴레옹’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1994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영어로 초연한 후 2017년 우리나라에서 한국어 버전으로 막을 올렸는데, 정작 프랑스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어 버전의 작품이 한국에서 첫 공연을 올리는 셈이다.
뮤지컬 ‘나폴레옹’이 이같은 특이한 이력을 갖게된 데는 박영석 프로듀서의 결단력과 오리지널 팀의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이 영향을 미쳤다. 박 프로듀서는 2017년 이 작품의 한국어 버전 공연을 올린 이후 프랑스어 버전 제작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주연을 맡기로 한 프랑스 배우 로랑방이 ‘정치적 논쟁이 많은 나폴레옹의 서사가 프랑스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며 시선을 중국, 대만 등 아시아로 돌렸다. 시장이 달라지면 작품의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 박 프로듀서는 오랜 협상 끝에 직접 오리지널 판권을 샀고, 이를 문화에 맞게 각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국내 제작사가 해외 작품의 판권을 사들여 오리지널 작품을 제작한 후 한국에서 세계 시장 진출 가능성을 검토하는 셈이다.
올해 3월 한국을 찾은 뮤지컬 ‘식스’ 오리지널은 아예 한국 제작사가 초기부터 자본을 투입한 사례다. 정인석 아이엠컬쳐 대표는 2018년 영국 아츠씨어터 쇼케이스에서 처음 ‘헨리8세 영국 국왕의 6명의 왕비에 대한 이야기’라는 이 공연의 내용을 접하고 준비 단계부터 투자를 단행했다. 작품은 2020년 국내에서 라이선스(음악과 대본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한국에서 다시 만드는 방식)로 개막 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추진이 중단됐고, 이후 영국에서 공연이 재개되면서 영국 오리지널 팀이 아시아 최초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처럼 국내 뮤지컬 제작사가 국내에서 작품을 제작해 해외에 진출 시키는 것을 넘어 해외 작품의 제작에 관여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세 덕분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와 함께 해외 뮤지컬 제작사가 가장 눈여겨 보는 시장 중 하나다. ‘뮤덕(뮤지컬 덕후)’으로 불리는 독특한 팬덤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제작사들의 최종 목표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진출이지만 한국 시장에서 반응을 살피는 일은 오리지널 제작팀에게도 글로벌 시장에서 가능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절차 중 하나가 됐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여기에 새로운 작품을 찾는 국내 뮤지컬 제작사의 수요도 맞아 떨어졌다.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국내 공연 이후 해외 작품의 판권을 사오거나,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국내에서 공연을 올리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수많은 작품이 3~4개월 단위로 개막과 폐막을 반복하다보니 더 이상 국내에서 공연할 ‘새로운 작품’을 찾는 게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제작사들은 직접 해외에 새로운 작품을 찾아서 제작을 함께하며 좋은 작품을 ‘선점’하고 있다. 국내 한 대형 뮤지컬 제작사 관계자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이미 커버린 시장이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먼저 오픈을 하는 건 오리지널 팀에게 신선한 모험이 될 수 있다”고 이같은 분위기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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