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미술은 ‘이미지’를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다른 점도 뚜렷하다. 사진이 기계장치를 통해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라면 미술은 물감 등 재료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 하는 일이라는 차이가 있다. 사회 현장에서 25년 동안 수많은 보도사진을 찍으며 ‘사진의 문법’에 익숙한 사진기자가 미술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신간 ‘미술-보자기’는 통신사인 연합뉴스 도광환 사진기자가 9년여 동안 애착해 온 미술에 관한 이야기다. 미술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사진으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미술로 풀었다.
저자는 그동안 미술에 관해 무지함을 넘어 무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우연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을 관람한 뒤 미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고 한다. 이후에 미학, 문학, 철학 책들도 탐독하며 미술에 대한 심미안을 키워왔다.
물론 서기 1세기 최후의 만찬 중인 예수와 제자들을 촬영한 사진기자는 없었다. 사진 자체가 만들어진 것은 약 200년 전에 불과하다. 이야기에서 사진보다 미술이 더 우위에 있을 수 있는 점이다.
이 책에 ‘나’는 누구인가, ‘나’를 둘러싼 사람들, ‘나’를 만든 정신과 물질, ‘나’와 예술적 사유라는 대제목 아래 자화상, 가족, 여성, 신화, 종교, 도시, 자연, 상상, 최초 등 117개 소항목에 따라 222편의 작품을 풍부한 도판과 함께 소개한다. 물론 이들은 미술사나 작가들의 화풍, 에피소드 등이 아니다.
전체적으로 중세에 벗어나 ‘ 개인의 발견’이 이루어진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에서 시작해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을 중심으로 이따금 우리 미술 작품도 예시하며 다양한 시각으로 감상한 짧은 이야기들을 모음이다. 미술 교양서적 중 이렇게 많은 작품을 제시하는 책은 많지 않다. 개별 이야기는 짧지만 강한 울림이 느껴진다.
책은 작품마다 저자가 느낀 사람들의 모습과 살아가는 이야기, 작가와 시대의 고민 등을 자신의 사유로 걸러 풀어나간 이야기다. 책명처럼 보자기에서 뭔가를 하나하나 꺼내듯이 톡톡 던지는 이야기다. 저자가 쓴 글들의 방향과 작품들이 가리키는 종착지는 결국 ‘나’다. ‘나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해 이야기는 ‘약속, 나를 찾는 일’로 끝난다.
책은 그림 작품들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도록 180도 펼쳐지면서도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실로 꿴 제본’을 택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더 유리한 방식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인생은 짧다. 권력과 예술가는 더 짧다. 예술은 길다. 그 이야기는 더 길다”고 강조한다.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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