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심에서 싹을 틔운 질투는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한다. 아내를 향한 사랑을 열렬히 고백하면서도 의심에 사로잡혀 그의 죽음을 예고하는 모순을 그려낸 연극 ‘오셀로’가 예술의전당에서 지난 12일 개막했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셀로’는 베니스 공화국에서 영웅으로 추대받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 사이 일어난 비극을 다룬다. 사랑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부부에게 간계를 꾸미는 오셀로의 부하 ‘이아고’가 끼어들면서 파란이 시작된다.
어두운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치는 ‘물’이다. 무대 앞에는 고요한 개천처럼 물이 흐른다. 암흑이 뒤엎어 불길함이 맴돈다. 데스데모나의 사랑에 한 치의 의심도 없던 오셀로의 마음이었을 때는 수면이 평온하다. 하지만 이아고의 교묘한 설득으로 부하인 ‘카시오’와 데스데모나의 사이를 의심하게 되자 오셀로는 발로 툭툭 두드리며 수면을 흩뜨린다. 처음에는 잔잔한 파동에서 비롯된 감정의 변화가 거센 물결이 된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프레스콜 기자간담회에서 박정희 연출은 “물은 죽음의 강을 나타낸다. 현잡한 지옥도를 축약해놓은 것”이라면서 “처음에는 데스데모나가 물 속에서 죽는 방향을 구상했지만 극장에 들어와 보니 물이 차갑고, 여배우한테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아서 쓰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연극을 이끌어 가는 정서는 불안이다. 박정희 연출은 “오셀로는 이아고의 연극이라고 하지만 셰익스피어가 오셀로라고 이름 지은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오셀로가 가진 이질성과 특성을 통해 관객들에게 감정을 환기하려 했다”고 밝혔다. 지하 벙커로 설정된 무대에 대해서도 “가장 불안한 장소이면서 가장 안전한 장소로 지하벙커를 생각해서 무대를 구축했다”고 덧붙였다.
배우 박호산과 유태웅이 오셀로 역을 맡아 열정적인 사랑과 배신의 상처를 오가는 극적인 심리 변화를 연기한다. 박호산은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을 읽을 때 오셀로가 바보 같았다. 질투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남의 말에 휘둘려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했다”면서 “그걸 만들 수 있는 힘은 열등감보다 사랑이어야 한다고 해석했다”고 말했다. 유태웅은 “데스데모나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 그러지 않아서 사건을 이렇게까지 끌고 오나 생각했다. 오셀로가 갖고 있는 자존심과 용병이라는 외로움이 섞여 물어볼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그런 오셀로를 표현하기 쉽지 않았는데 관객들에게 최대한 많이 전달해보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모든 일의 원흉인 이아고는 손상규가 연기한다. 사악한 인물이지만 정직을 가장하는 화술에 관객 또한 몰입하게 된다. 손상규는 “가장 고귀한 인간이 가장 평범하고 저열한 인간에게 추락당하는 얘기라고 이해해 구조를 짰다”고 밝혔다. 데스데모나 역으로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하는 이설은 “데스데모나가 수동적인 성녀 이미지가 강해서 깨고 싶다는 생각에 연출님과 대화 많이 나누면서 시도해봤다. 제가 해석한 데스데모나는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연극은 코로나19로 중단됐던 토월전통연극 시리즈의 일환이다. 다음달 4일까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