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반도체 장비 회사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5조 원을 투자해 대규모 연구 시설을 건립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골자로 한 반도체지원법을 제정한 후 투자 성과가 계속 가시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AMAT는 22일(현지 시간) “2026년 완공을 목표로 최대 40억 달러(약 5조 2000억 원)를 투자해 대규모 연구 시설을 지을 계획”이라며 “엔지니어링 일자리가 최대 2000개 창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AMAT가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배경에는 미국이 반도체 기업의 자국 투자를 장려하고자 5년간 생산 보조금(390억 달러), 연구개발(R&D) 지원금(132억 달러) 등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지원법이 자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AMAT는 투자 상한선을 공개했지만 구체적인 투자 내용과 속도는 바이든 정부의 지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를 뒀다. 게리 디커슨 AMAT 최고경영자(CEO)는 “정부 지원이 어떤 것이든 새 연구시설을 짓겠지만 규모와 건립 속도는 정부가 어느 정도 지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AMAT는 새로 지을 연구 시설에서 삼성전자와 인텔·TSMC 등 반도체 제조 업체는 물론 대학 등과도 새로운 반도체 장비 개발 연구와 테스트를 동시에 진행할 방침이다. AMAT는 완공 이후 초기 10년간 250억 달러 규모의 연구 프로젝트가 이뤄질 것이라며 “새로운 반도체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3분의 1로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시설이 실리콘밸리에 들어선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지난 30년간 실리콘밸리에서 이 같은 규모의 반도체 연구 시설 건설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은 없다”며 이번 대규모 투자를 높게 평가했다. 기존에 만들어진 반도체 팹은 비교적 물가와 인건비가 저렴한 지역에 들어서는 경향을 보였다. 실리콘밸리의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인근 대학의 기술 인재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 간 높은 시너지 비용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백악관은 이 같은 투자 결정에 즉각 화답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은 이날 AMAT 본사를 전격 방문해 “이번 투자는 정부의 인센티브 덕분”이라며 “이 시설이 완공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시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가 스스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국가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AMAT에 대한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백악관은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지원법에 서명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민간기업들이 향후 10년간 반도체 생산과 공급망, R&D에 약 1400억 달러(약 184조 원)를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밝혔다”고 법안의 성과를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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