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있고 싶어요. 인간을, 그들이 춤추는 걸 보고 싶은 거죠. 그들 사이를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두 다리가 있는 인간이 되어 뛰고 춤추고 싶어요”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가 시작되면서 등장하는 유명한 인용구이다. 지난 9일 버추얼 기자회견에서 랍 마샬 감독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원작 동화로 돌아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출발점이었다”며 “1830년대에도 ‘인어공주’는 동시대를 앞서가는 스토리였다. 자신이 사는 바닷 속이 아니라 그 너머로 자아 발견의 여행을 떠나고 싶은 어린 소녀의 진취성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어는 눈물이 없다. 그녀가 더 많이 느끼고, 더 고통받을 것이란 아이디어에서 착안해 좀더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갔다”며 “깊이와 감정이 라이브 액션 영화의 묘미이자 이 장르가 구현할 수 있는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실사 영화로 만든 ‘인어공주’는 아틀란티카 바다의 왕 트라이튼의 자유분방한 막내딸 에리얼이 늘 인간들이 사는 바다 너머 세상으로의 모험을 꿈꾸다가 벌어진 일탈과 운명적 사랑을 그린다.
이 영화는 할리 베일리라는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디즈니 프린세스 중 인기를 누려온 인어공주 에리얼 역에 흑인배우를 캐스팅했을 때 디즈니는 다양성 시대의 흐름에 편승한 뻔한 의도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가 베일을 벗으면서 할리 베일리 캐스팅 논란은 칭찬일색으로 바뀌었다. 신비로움을 뿜어내는 할리 베일리의 연기와 노래 실력에 한없이 빠져든 덕분이다.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킹)와의 케미는 물론이고 에리얼의 바닷 속 세 친구인 물고기 플라운더(제이콥 트렘블레이), 바닷가재 세바스찬(다비드 딕스), 갈매기 스커틀(아콰피나)와의 연기 호흡이 좋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인어왕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 실소가 터진다. 인어가 암컷만 있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얼굴은 하비에르 바르뎀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을 띤 용왕 트라이튼을 영접하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영화 속 웃음 포인트는 한국계 배우 아콰피나의 전담이다. 아콰피나는 갈매기 스커틀의 코믹한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스커틀버트’라는 노래를 랩으로 불러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힙합 뮤지컬 ‘해밀턴’으로 유명한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 특유의 훅이 아콰피나가 시작한 랩송에 다비드 딕스(세바스찬)이 끼어들어 엔도르핀을 팍팍 만들어낸다. 이날 프리미어에 앞선 무대 인사에서 롭 마샬 감독은 영화 속 내내 웃음 폭탄을 터트리는 다비드 딕스와 아콰피나를 치켜세우며 “자신의 연기에 자기 자신도 웃어버려 부끄럽다는 배우가 아콰피나”라고 애정을 표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돌비 애트모스의 몰입감 넘치는 사운드가 다시 한번 위력을 발휘한다. LA프리미어가 열린 돌비 극장은 라이브 뮤지컬 공연이 위기를 느낄만한, 풍성하고 꽉찬 소리가 인어공주의 세계로 완전히 발을 들여놓게 했다. 특히 사악한 바다 마녀 우르슐라(멜리사 맥카시 목소리 연기)의 등장에서 음악의 디테일을 선명하고 깊이 있게 드러내어 몰입감을 한껏 높인다. 촉수를 뻗는 거대한 오징어의 형상으로 등장한 우르슐라는 에리얼의 얼굴을 촉수로 들어올려 그녀의 목소리를 앗아간다. 마샬 감독이 8명의 댄서를 동원해 촉수들의 안무를 만들어낸 장면이다.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촬영 일주일 후 코로나로 인해 7개월의 휴지기를 포함해 총 4년 반의 제작기간이 소요됐다. 바다의 물과 모든 배경, 물고기, 머리카락까지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었는데 할리, 하비에르, 멜리사가 트래킹 마크가 있는 가발 모자를 쓰고 촬영에 임해야 했다.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 ‘인어공주’는 IMAX를 포함한 극장에서 관람할 수 있다./ 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HFPA 회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