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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에도 ‘대치동’이 있다?…초고령사회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학군수요” [이수민의 도쿄 부동산 산책]

도쿄를 상징하는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도쿄타워/연합뉴스




‘일본은 한국이 미리 엿볼 수 있는 미래다.’

출산율은 낮아지고 고령 인구는 급속하게 늘어나는 한국의 인구 구조를 설명하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입니다. 또한 이 문장은 지난 1970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1%를 넘으면서 ‘고령화 사회’에 일찌감치 진입한 일본, 그리고 2001년 고령인구 비율이 7.2%를 기록하며 ‘명실상부’ 고령화 사회에 포함된 한국의 상황을 단편적으로 기술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분석에 따라서는 한국 인구 규모가 일본보다 작고, 출산율의 감소세가 빠른 탓에 일본보다 더 거센 고령화의 파고를 뛰어넘어야 할 것이라 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해마다 출산율 최저 수준을 갱신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부동산의 이야기로 돌아와 보죠. 한국에서 내 집 마련에 뛰어든 분들, 혹시 이런 이야기 들어보신 적 있나요? “인구가 줄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집값은 무조건 떨어진다”, “다들 애를 낳지 않는데 무슨 학군지냐, 교통 인프라나 개발호재만 봐라”. 제가 과거에 부동산을 매수한다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이 같은 지적을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모두 인구소멸에 대한 경계에서 출발한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적은 참일까요?

저는 여기에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고소득 일자리가 전무하고 생활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이라면, ‘인구소멸=집값폭락’의 등식이 맞아 떨어질 것입니다. 부동산 매수를 결정하는 요건으로 학군지를 따지는 것도 당연히 무의미하겠죠. 아이들이 없어 학교 자체가 사라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 지역이 대도시라면? 그 국가가 완전히 망하지 않는 한, 아니 망하는 그날까지도 ‘상대적’ 인 생활 편의성은 영향력을 떨칠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인류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도쿄 도심은 여전히 개발 중이다. 사진은 시부야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프라 개발 현장/이수민기자


초고령사회인 일본, 부동산 신화가 다시 시작된다고?

제가 앞서 인구가 늙고 줄어드는 일본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일본은 이미 고령사회(1994년)와 초고령사회(2006년)에 진입해 노인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만큼, 참고한 부분이 제법 있기 때문인데요. 이런 일본도 거시경제의 흐름, 주택 시장의 공급-수요 등에 따라 땅값과 집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만약 인구소멸이 부동산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유일무이한 강력한 요인이라고 한다면, 일본 부동산 가격은 바닥을 파고 지하로 들어가도 모자랄 상황입니다. (인구구조만 보면 말이죠.) 하지만 초저금리와 엔저라는 거시경제적 요인과 신축 공급이 수요대비 부족한 상황이 겹쳐지면서 타워맨션과 상태가 좋은 집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뚜렷합니다. 내외국인 투자가 활발해지니 땅값도 오름세입니다. 버블이 터진 이후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토지신화(土地神話:부동산 가격은 반드시 오른다는 믿음을 나타낸 말로서 과거 일본 버블경기를 떠받히고 있던 토지 상승세를 뜻함. 시기상 1986~1990년.)라는 단어가 ‘신토지신화(新土地神話)’로 새롭게 등장할 정도죠. 신토지신화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어보이기는 하지만, 수요가 몰리는 지역의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부동산에 큰 관심이 없는 일본 사람들도 수긍하는 부분입니다.

지난 2017년 일본 국토교통성이 예상한 도쿄도 2050년 인구 증감추이. 붉은 부분은 인구가 기준연도인 2010년에 비해 늘어난 곳이며 푸를수록 인구가 줄어드는 곳이다./국토교통성 홈페이지 갈무리


수요에 따른 상승세는 단지 호사가들의 입에만 머무는 내용은 아닙니다. 지난 연재에서 살펴봤던 올해 1월 기준 공시지가 수치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지요. 당시 수치를 분석하면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다름아닌 도쿄 분쿄구의 상승세였습니다. 도쿄도는 총 23개구가 있는데 분쿄구는 면적 11.29㎢로 다소 좁은 편에 속하는 자치구입니다. 인구는 23만9624명(2022년 1월 1일 기준)으로 바로 옆에 붙어있는 신주쿠구(34만6028명, 18.22㎢)보다는 적지만, 치요다구(6만668명, 10.21㎢)나 다이토구(21만2032명, 10.11㎢)에 비해서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이 지역에 주목하는 이유는 올해 공시지가에서 집값이 비싼 지역 5위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통상 일본 부동산은 거주 및 업무수요가 높은 5구(치요다·미나토·츄오·시부야·신주쿠)가 이끌어 가는 추세인데, 이 집 값 만큼은 분쿄구가 신주쿠구를 밀어내고 톱 5에 포함이 되었습니다. 외국인인 저로서는 그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고로 주택지 가격 상위 6위는 주거지로서 선호가 높은 메구로구였습니다.)

도쿄도의 23구를 나타낸 지도. 분쿄구는 빨갛게 표시된 구역. 도심 3구 가운데 하나인 치요다구와 연접하고 있다./분쿄구 홈페이지 갈무리




개발업자, 부동산 중개업자, 기자, 학부모 등등 접촉할 수 있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분쿄구는 왜 집값이 비싼가요? 이구동성으로 이런 답이 돌아왔습니다. “분쿄구는 학군지예요. 아이를 키우기 좋습니다. 좋은 학교가 많고 치안도 안정돼 있습니다. 살기 좋은 곳입니다.” 학군지, 즉 통학 가능한 학교들의 입시성과 등이 좋고, 학원 인프라가 좋다는 의미일텐데요. 실제로 이 분쿄구에는 유명한 대학들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일본 국립대학 가운데 최고로 치는 동경대학(혼고캠퍼스)을 비롯해 오챠노미즈여자대학, 도쿄의과치과대학, 니혼의과대학, 준텐도대학 등등 지도를 보다보면 캠퍼스들이 주르륵 나옵니다. 상주 또는 거주하는 인원 가운데 교원과 학생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한 중고등학교가 하나로 합쳐진 곳들이 많은 일본 학군 특성상 중학교 입시가 대학 진학에 상당히 중요한데, 이 분쿄구에는 입시 성적이 좋은 중고일관교(입학한 중학교에서 별 문제가 없으면 고등학교까지 쭉 다니는 구조)가 다수 있다고 합니다. 만약 사립 중고가 아닌 도립 중고를 지망한다고 하더라도, 인근에 입시 성적이 좋은 도립중고가 있어 통학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입시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뜻은 곧, 입시학원 인프라도 갖춰져 있다는 의미인데요. 실제로 중학 입시로 유명한 학원 프랜차이즈들이 분쿄구 거주 학생을 활발하게 모집하는 모습도 자주 관찰됩니다.

분쿄구 대학 가운데 인지도가 가장 높은 동경대학. 이 대학은 이공계 전공 연구실이 모여있는 분쿄구 혼고캠퍼스와 인문사회과학계 전공 연구실이 있는 시부야구 고마바 캠퍼스 등으로 이뤄져있다./이수민기자


“살기 좋은 동네”…인구가 줄어도 ‘이 수요’는 살아남는다

학군지라는 의미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려는 수요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의미로 파악하면 좋을 것입니다. 전세제도가 있는 한국은 학군지 수요가 그 지역의 갭투자 조건(?)을 규정한다면, 일본에서는 월세 수준 또는 매매 가격을 결정하는 조건이라는 점은 다소 다를 수 있겠지만요. 일정 수준 이상 소득이 되는 가정이 모이게 되고 1인가구보다는 패밀리 타입(방 두개 이상) 주택의 수요가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점도 이 지역 특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분코구는 최근 수 년 간 학군 수요를 겨냥한 신축 맨션들이 다수 건설 되었고, 현재도 건설 중인 지역입니다. 일본 부동산 개발회사인 오픈하우스디벨롭먼트는 자신들의 신축 맨션을 홍보하는 분양 책자에 2008년부터 지금까지 분쿄구에만 총 32곳에 달하는 맨션을 개발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 회사 모델하우스에서는 “범죄 등 사건사고 발생 빈도도 현저하게 낮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도심과 매우 가깝지만, 치안이 좋아 안정적으로 살아가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학군 따지는 소비자를 겨냥한 영업멘트겠죠.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도심 곳곳에서 ‘노인홈(老人ホ?ム)’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노인홈은 고령자들이 자녀 등 가족과 떨어져 거주하는 시설을 가리키는 데요. 한국의 요양원과 요양병원, 실버타운 전체를 아우르는 광의의 개념으로 보시면 될 것입니다. 국가 재정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입소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곳도 있는데요. 고급 주택지로 이름난 시부야구 히로오, 미나토구 아자부쥬반 등에서도 이 노인홈이 성업 중이었습니다. 이처럼 초고령사회의 뚜렷한 증거가 보이는 가운데서도, 학군 수요는 또 여전하다는 점이 일본 부동산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미래의 힌트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도쿄=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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