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자연 계열에 입학한 학생들의 정시 합격 점수가 고려대·성균관대 자연 계열 입학생의 합격 점수보다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대 쏠림 현상과 지난해 서울대가 처음 도입한 교과 정성 평가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국어·수학·탐구 영역 백분위 평균 합격선(상위 70% 컷) 기준이어서 이 점수만으로 대학 서열을 논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2일 종로학원이 국어·수학·탐구 영역 백분위 평균 합격선 기준으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정시(일반 전형) 서울대·고려대·성균관대 합격 점수를 분석한 결과 서울대의 평균 점수는 94.3점으로 고려대(95.1점), 성균관대(94.5점)보다 낮았다. 백분위 평균 합격선이 공개된 2020학년도 이후 서울대가 두 대학에 점수로 밀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0학년도에는 0.8점, 2021학년도에는 1.9점, 2022학년도에는 1.3점 높았지만 지난해 수능에서 점수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2020학년도 이전까지는 대학마다 합격선 발표가 달랐다. 커트라인의 70% 점수를 공개하기도 하고 90%를 발표하기도 했다. 대학 내 학과들을 비교할 때는 유용했으나 대학 간 비교는 어려웠다. 깜깜이 논란이 일자 2020학년도부터 대다수 대학들은 커트라인의 70%로 기준점을 통일해 발표하고 있다.
의학 계열을 제외한 순수 자연 계열 일반 전형에서도 서울대 자연 계열의 합격 점수(93.9점)는 고려대(94.9점)보다 낮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백분위 기준으로만 순위를 단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국어·수학·탐구 백분위 평균 70% 컷 기준으로 서울대 자연 계열이 두 학교에 역전당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자연 계열의 합격 점수가 하락한 배경에는 의대 쏠림 현상이 자리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대 의대라도 들어가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서울대 자연 계열의 전체 합격선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실제 2023학년도 서울대 의학 계열 정시 합격선은 대부분 상승했다. 서울대 의예과 합격 점수는 전년 대비 0.1점 오른 99.3점, 치의학과는 2점 상승한 99.0점, 수의예과는 0.5점 높은 97.3점이었다. 약학 계열만 전년 대비 0.2점 하락한 95.8점으로 집계됐다.
고려대 의대 역시 합격 점수(99.4점)가 2022학년도 대비 1.4점, 성균관대 의대(99.4점)도 0.4점 올랐다.
인문 계열은 학교별 순위에 변동이 없었다. 2023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가 95.7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고려대 94.1점, 성균관대 92점 등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인문 계열 일반 전형 기준 1위는 정치외교학부(98.5점)였으며 이어 인문계열 및 농경제사회과학부, 경제학부, 자유전공학부 순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서울대가 정시에 교과 정성 평가를 적용한 결과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서울대 자연 계열의 경우 정성 평가 기준이 명확한 반면 인문 계열은 그렇지 않아 서울대가 제시한 기준에 못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 위축돼 하향 지원을 하면서 서울대 자연 계열 합격 점수가 다소 하락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백분위 점수만으로 서울대의 위상 하락을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 장지환 배재고 교사는 “서울대 자연 계열 점수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백분위 70% 컷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는 표준점수를 가지고 과목별 비율을 정하는 등 학교별 점수 계산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도 “백분위 평균 합격선은 대학별 환산 방법에 따라 점수를 낸 후 백분위로 역산한 것”이라며 “(백분위 평균 합격선으로) 대학 내 학과 간 비교는 가능하지만 대학 간 비교를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자연 계열의 하락이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서울대가 올해 수능부터 과학탐구2 과목 필수 응시 조건을 폐지하면서 타 대학 의대 지원자들이 서울대 자연 계열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장 교사는 “서울대는 과학탐구2 과목이 필수여서 수험생들이 수능을 보기 전 서울대에 집중할지, 의대에 집중할지 고민했어야 했는데 올해부터 응시 조건이 사라지면서 기존 의대 준비를 하는 학생들도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상위권 대학의 합격선 변화로 2024학년도 입시 예측에 혼란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합격 점수 지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임 대표는 “수험생 입장에서는 대학 합격 점수가 매우 중요한 자료”라며 “현재 국어·수학·탐구 평균 70% 컷 점수보다 더 정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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