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원회(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전세사기 피해 대책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경청해보니 여야 간 합의를 이룰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
“일각에서는 전세사기 피해 대책 입법을 지도부의 협상에 맡기자는 의견도 제기됐지만 우리 상임위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맡겨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야가 치열한 토론 끝에 통과시킨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이달 1일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그 입법 과정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회가 입법 강행 처리를 두고 극한의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전세사기 해법에 대해서 만큼은 합의 정신에 입각한 마라톤 협상 끝에 상임위에서 대타협을 이뤘기 때문이다. 서울경제신문은 여야 협치, 합의 정치 복원의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차원에서 국토위 소속의 유경준·김병욱 의원을 4일 서울 중학동 사옥으로 초청해 이번 특별법 입법 과정을 되짚어봤다.
협상 초기에는 비관적인 분위기가 우세했다. 김 의원은 “우리 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받지 못한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한 반면 정부는 사적 계약에서 발생한 사기 피해를 정부가 책임지면 안 된다는 입장이어서 합의가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당내에서는 좀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뿐 아니라 (특별법을 여당의 협조 없이 야당의 주도로) 단독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고 전했다. 김 의원은 “법안을 우리 당 주도로 단독 처리했다면 당장은 지지층의 호응을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나중에는 박한 평가를 받게 된다”며 단독 처리를 자제했던 배경을 소개했다.
파국을 막기 위해 유 의원은 정부를, 야당인 김 의원은 당내 강경파를 각각 설득했다. 유 의원은 “전세사기 유형별 피해에 따라 다양한 구제 방안이 있기 때문에 공공이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제안하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기 피해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제공하는 방안은 정부가 4월 27일 발표한 대책에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당일 전세피해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이튿날 국회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됐고 여야는 5월 1일부터 본격 심사에 돌입했다.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야당이 주장한 ‘선 지원, 후 구상권 행사’ 방식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는 사기 주택에 대한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 채권을 공공기관이 직접 매입해 피해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안이었다. 정부와 여당은 수용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야가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에도 물밑 조율은 이뤄졌다. 유 의원은 “야당의 주장에 대해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절충점을 고민했고 우리 당의 국토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정부를 설득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피해자 구제를 위해 우선 빨리 대안을 만들고 부족한 부분은 추후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만 고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당 지도부를 설득했다”고 회상했다.
김 의원은 착오 송금 피해 구제책을 전세사기 피해 구제책에 적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착오 송금이란 돈을 실수로 타인의 계좌에 잘못 보내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예금보험공사는 권한을 위임받아 착오 송금액을 수취인으로부터 돌려받은 뒤 ‘사후 정산’ 방식으로 착오 송금자에게 반환해줄 수 있다. 김 의원은 이를 응용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피해자로부터 전세 보증금 반환 채권자의 지위를 양도받아 피해자 대신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고 미반환 시 경·공매 등으로 전세 보증금을 회수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에 정부는 공공기관의 직접 개입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HUG의 경·공매 대행서비스 제공으로 절충안이 마련됐다.
유 의원과 김 의원은 보완을 위한 추가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유 의원은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상자의 요건 중 하나가 ‘전세 보증금 5억 원 이하’인데 이 같은 금액 기준보다는 예를 들어 ‘전세 보증금 상위 10% 이하’와 같은 비율 기준으로 바꾸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임차인 보호를 위해 HUG가 전세 계약에 대한 심사를 철저히 하면서 보증금에 대한 보증률을 높이는 한편 주택의 법률 및 채무 관련 정보를 임차인이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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