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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의 탄생…코리안 투어 강타한 ‘순둥이 헐크’

단숨에 남자골프 구세주로 등장한 정찬민

개성 강한 외모와 괴력의 장타로 인기몰이

헐크처럼 내면엔 또 다른 캐릭터 숨어있어

맛집, 영화 즐기고…동생들과는 항상 ‘유쾌’

개성 넘치는 외모와 무시무시한 괴력을 자랑하는 정찬민은 마블 시리즈에서 막 뛰쳐나온 듯하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 투어에 새로운 슈퍼히어로가 탄생했다. 188cm의 큰 키에 115kg이 넘는 거대한 몸, 여기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마블 시리즈 영화에서 막 뛰쳐나온 듯한 이 사내는 360m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장타 외에도 감각적인 쇼트게임까지 선보이며 5월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첫 우승을 달성했다. 당시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에 골프 팬들은 순식간에 빠져 들었다. ‘코리안 헐크’ 정찬민 얘기다.

정규 투어 2년 차를 뛰는 정찬민은 올해 KPGA 투어를 대표하는 스타로 떠올랐다. 개성 넘치는 외모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파워 샷은 침체에 빠진 남자골프가 그토록 찾던 캐릭터다. 평소의 헐크가 점잖고 지적인 천재 과학자이듯 필드 밖 정찬민은 ‘순둥이’로 불린다. 대회가 없을 때는 조용히 드라이브를 즐기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영화를 감상한다. 그가 수염을 기른 것도 “좀 더 강해보이면 어떨까”라는 코치의 권유에 의해서다.

첫 우승을 기념해 우리금융 챔피언십을 앞두고 동료들에게 핫도그를 쏜 정찬민.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제공


수염을 기른 후 인상이 달라졌다.

“올해 초부터 코치님 권유로 길렀다. 프로는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는데 제 얼굴이 조금 밋밋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캐릭터 변신을 할까 하다가 수염을 길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듬성듬성 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잘 된 것 같다.”

마인드에도 변화가 생겼나.

“필드에서 자신감이 생기고 차분해진 면도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수염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약간 걱정도 했었는데 다들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다.”

정찬민을 지도하고 있는 박준성 코치는 “임성재가 챙이 일자로 된 모자를 쓰듯이 찬민이도 사실 모자 스타일에 변화를 줄까 했다. 근데 찬민이가 항상 웃는 얼굴이다. ‘순둥순둥’하니까 강인한 인상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염을 택했다”고 했다. 이어 “순둥이이긴 한데 시합에 들어가면 진짜 몬스터나 헐크처럼 변한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참 좋아하는, 때 묻지 않은 해맑은 아이다”라고 말했다. 정찬민의 연습 라운드 고정 멤버는 한 살 어리지만 정규 투어 입문 동기인 최승빈과 배용준이다. 두 동생들이 연습 라운드 도중 짓궂은 농담을 하거나 덩치가 큰 정찬민의 양팔에 매달리거나 등에 자주 올라타지만 정찬민은 그저 허허 웃는다.

정찬민과 박준성 코치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정찬민이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다. 당시 국가대표 상비군을 맡고 있던 박 코치는 “찬민이는 그때도 덩치가 좋았다. 1번 홀에서 치는 걸 보는데 유연성도 겸비하고 있었다. 나중에 국가대표 돼서 꼭 만나자고 했는데 1년 만에 진짜 왔다”고 되돌아봤다.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뒤 골프부가 있는 경북 구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정창민은 고교 졸업 후에는 부산 아시아드CC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박 코치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갔다.

고등학생이던 2016년과 2017년 권위 있는 아마추어 대회인 송암배를 2년 연속 제패한 정찬민은 국가대표(2017~2018년)를 거쳐 2019년 KPGA 준회원과 정회원 자격을 차례로 획득했다. 이후 2021년 2부인 스릭슨 투어에서 시즌 최종전을 포함해 2승을 거두며 상금왕을 차지했다. 지난해 정규 투어에서는 평균 317.11야드를 날려 장타왕에 올랐다. KPGA 투어에서 시즌 평균 비거리가 310야드를 넘긴 건 정찬민이 최초다.

스릭슨 투어 상금 1위 자격으로 정규 투어에 데뷔했지만 루키 시즌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조바심이 좀 있었다. 또한 중간(8월)에 투어를 잠깐 쉬고 미국 PGA 2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 Q스쿨을 보러 갔었다. 미국 가기 전에 코리안 투어 시드 유지를 사실상 확정하고 싶었다. 그런 것 때문에 조바심이 더 났던 것 같다. 이제는 우승으로 5년 시드를 받아 마음이 너무 편하다.”

장타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티샷을 가장 멀리 날린 기록은 얼마나 되나.

“시합 중에는 그런 걸 별로 신경 안 쓰는데 기사를 보니 360m를 쳤다고 하더라. 국가대표이던 2017년 영국 로열리버풀에서 열린 영 챔피언스 트로피 대회 때는 370m를 친 적도 있다.”

티샷이 너무 멀리 날아가서 곤란했던 적도 있을 것 같은데.

“가끔 있다. 특히 코스가 휘어진 도그레그 홀에서는 드라이버 잡기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페어웨이를 놓치더라도 남들에 비해 짧은 클럽으로 공략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페어웨이를 지키지 못하면 스핀도 잘 안 먹고 이것저것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스트레스를 받는다.”

정찬민이 뜨면서 유튜브에서는 2016년 송암배 아마추어 골프선수권 우승 영상이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파5 홀에서 2온 뒤 이글을 잡거나, 벙커나 물을 아예 넘겨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하자 해설가는 “좀 심하게 장타를 친다. 마치 혼자서 다른 코스에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정찬민은 이미 그 시절 다른 선수들에 비해 30m 이상 멀리 때렸고 볼의 체공시간도 1초 이상 긴 8.45초에 달했다. 정찬민은 “요즘 그 영상이 다시 나올 줄 몰랐다”며 “그때 동반자들이 말은 안 했지만 표정으로는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며 웃었다.

헐크와 매미 2마리. 한 살 어리지만 정규 투어 입문 동기인 최승빈(맨 왼쪽)과 배용준(맨 오른쪽)은 정찬민의 연습 라운드 고정 멤버다.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제공


최승빈을 업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린 정찬민.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제공


보통 18홀을 돌면서 드라이버는 몇 차례나 잡나.

“웬만해서는 드라이버로 공략하려고 한다. 보통 7~8차례 되는 것 같다.”

정찬민이 단순히 덩치만 좋아서 멀리 때리는 건 아니다. 박 코치는 “무엇보다 탄성이 뛰어나다. 탄력이 뛰어나지 않으면 그렇게 멀리 치지 못한다”며 “올 시즌을 앞두고선 전문 트레이너와 함께 체계적으로 몸도 만들었다. 배는 들어가고 상체 근육은 좋아졌다”고 했다. 장타자의 숙명은 방향성. 특히 OB 구역이 많은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박 코치는 “찬민이는 다른 선수들과 볼이 떨어지는 랜딩 존 자체가 다르다”며 “그래서 클럽 선택이나 코스 매니지먼트가 중요하다. 최근에는 우측으로 살짝 휘는 낮은 탄도의 페이드 샷으로 방향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했다. 정찬민이 드라이버 샷을 날릴 때 티를 상당히 낮게 꽂는 것도 방향과 관련이 있다. 워낙 스윙 스피드가 빠르고 뒤에서부터 올려 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일반 선수들과 같은 높이로 티를 꽂으면 비거리는 더 늘 수 있지만 컨트롤이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만약 PGA 투어에 가서 욘 람과 만난다면 어떨 것 같나.

“조금 먼 미래인 것 같아 많은 생각을 해 보진 않았지만 재미있을 것 같다. 꼭 맞붙고 싶다.”

지난 4월 초에 콘페리 투어 칠레 클래식에 다녀왔다. 컷 탈락했지만 나름 얻은 게 있을 텐데.

“지금까지 골프를 해온 게 헛되지 않다는 걸 느꼈다. 마음은 아팠지만 다음에는 충분히 통하고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동기부여도 됐다. 물론 거리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았다.”

정찬민은 올해 하반기 미국 무대를 다시 노크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경험이 부족해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올해는 우승 맛도 보고, 쇼트게임도 한층 날카로워진 덕분에 자신하고 있다. 주니어 시절부터 감각적인 샷을 선호해 그린 주변에서 웨지를 가지고 자주 놀았던 정찬민은 올 초 베트남 전지훈련 기간 100m 안쪽 샷 연습에 집중한 뒤로는 러프나 벙커에 대한 두려움도 떨쳤다. 약점으로 꼽히던 그린 플레이도 퍼터를 말렛형으로 교체하면서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정찬민을 중학교 시절부터 지도하고 있는 박준성 코치.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제공


장타를 치기 위해 롤 모델로 삼은 선수가 있나.

“없다. 나는 누구를 닮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나만의 스타일대로 하고 싶다. 굳이 찾는다면 과감하게 내지르는 로리 매킬로이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많이 했나.

“세 살 때부터 수영을 했다. 이후 축구, 태권도, 골프를 했다. 축구와 태권도는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골프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스크린골프를 하면서 시작했다.”

골프를 본격적으로 한 건 언제인가.

“초등학교 4학년까지 운동을 한꺼번에 4개 했다. 그러다 5학년 때 골프 시합에 나가면서부터 골프에 집중했다. 골프가 좀 더 재미있더라. 이후 몸 다칠까봐 태권도, 축구, 수영 순으로 그만 뒀다.”

부모님이 영어나 수학 학원 대신 운동만 시켰는데.

“그러게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맙다. 나 역시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에는 소질이 있었다고 본다.”

골프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손맛이 딱 와 닿았다.”

어렸을 때부터 장타의 맛을 안 건가.

“그런 건 아닌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장타를 치고 있더라.”

정찬민은 중2 때부터 고1 때까지 키가 30cm 정도 컸다. 아버지가 ‘키가 안 크면 골프를 안 시킬 거다’라고 하자 하루에 우유를 1리터씩 마셨다. 워낙 빠르게 성장을 하는 바람에 두 달마다 새 옷을 장만해야 할 정도였다.

다른 집안 식구들도 큰가.

“사촌까지 포함하면 저희 집안에서 제가 세 번째다. 사촌형 한 명은 농구 선수를 하고 있다. 부모님이 큰 편은 아니지만 집안 전체로 보면 키 큰 유전자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헐크가 그렇듯 그의 내면에도 또 다른 인격체가 있다. 야성미 넘치고 남자다움을 강조하는 마초기질과는 거리가 멀다. 박 코치는 “찬민이는 내가 너무 잘 안다. 음주가무를 전혀 즐기지 않는 바른생활 사나이다. 워낙 자기관리를 잘 한다. 그래서 미국에 가도 성공할 것”이라고 했다.

정찬민은 올해 하반기 미국 PGA 투어에 도전할 예정이다. 사진=민수용 골프전문 사진기자 제공


골프 외 좋아하는 건 뭔가.

“한적한 길에서 창문 열고 드라이브 하는 거 좋아한다. 맛집 찾아다니고 영화 보는 것도 즐긴다. 시합이 없거나 비시즌 기간에는 이런 게 내 소소한 즐거움이다. 시합 때 맛집 투어는 아버지나 캐디와 함께하고, 비시즌에는 부산에서 아카데미 식구들과 다닌다.”

주로 먹는 음식은.

“대부분 고기다. 시합 뛸 때 살이 빠지면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고기를 좀 더 찾는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엄청 먹는 스타일은 아니다. 많이 먹어야 3~4인분, 보통은 2~3인분 정도다. 제 덩치에 비하면 조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보는 건 집과 극장 중 어느 걸 선호하나.

“둘 다 좋은데 웬만하면 극장에 가서 보려고 한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귀멸의 칼날’이라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재밌게 본 영화는 뭔가.

“마블 시리즈는 전부 다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캐릭터는.

“당연히 헐크다. 내 별명이잖나. 헐크 별명을 갖게 된 후로 더 친근하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 장타 팁을 준다면.

“백스윙에서 힘을 빼고 내려오는 게 제일 중요하다. 세게 치려는 욕심에 톱에서부터 힘을 잔뜩 주는 분들이 많다. 그렇게 하면 정작 있는 힘조차 쓰지 못하고 거리 손해를 보게 된다. 허리높이까지는 손을 자연스럽게 내리고 허리부터 힘을 주는 게 효율적으로 파워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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