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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기분이에요" 한달에 4팩 수혈받던 희귀병 환자의 고백

[메디컬 인사이드]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유전자 이상으로 용혈 현상 반복

기적의 치료제 솔리리스 나왔지만

13년 넘게 年 약값만 5억원 이상

환자 500명중 150명만 보험 혜택

바이오시밀러 도입해 약값 낮춰야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발작성 야간 혈색 소뇨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병원에서 3~4시간씩 누워서 수혈을 받아도 그 순간 뿐이었어요. 돌아서면 또다시 어지럼증에 시달리곤 했죠. 그런데 치료제를 맞고 부터 거짓말처럼 몸이 가뿐해졌어요.”

서경자(67·가명) 씨는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다닌지 13년이 넘었다. 젊어서부터 원인 모를 어지럼증에 시달렸다는 서씨. 처음에는 가임기 여성에게 흔히 나타나는 빈혈 증상이라고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철분제를 열심히 챙겨 먹어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기운이 딸리고 나날이 어지럼증이 심해져 무기력한 나날을 이어가던 서씨는 화장실에서 콜라색 소변을 발견하고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 '발작성 야간 혈색소 뇨증(PNH·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 진단을 받은 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느라 몇년이 더 흘러서였다.

◇ 유전자 문제로 적혈구 깨지는 희귀병…‘심한 빈혈·콜라색 소변’이 특징


이름조차 생소한 PNH는 골수 내 조혈모세포에 PIG-A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적혈구를 보호하는 방어 단백질이 부족해지는 질병이다. 비정상적 조혈모세포에서 생성된 이상 적혈구가 보체와 비정상적 반응을 일으켜 주로 야간에 적혈구가 깨지는 용혈 현상을 일으킨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파괴된 혈구세포가 소변과 함께 섞여 나오면서 갑작스럽게 콜라색 소변을 보는 특이적 증상이 나타난다”며 “체내에서 산소 운반을 담당하는 적혈구가 깨지는 과정에서 중증 빈혈도 나타난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PNH는 인구 100만 명당 10~15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 질환이다. 국내 환자 수는 500명 남짓에 불과한데 초기 증상이 피로감, 경미한 황달, 잇몸 출혈 등으로 재생불량빈혈과 비슷하다보니 진단 자체가 쉽지 않다. 장 교수는 “극심한 복통으로 54번이나 응급실에 실려오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 PNH 환자도 있었다”며 “빈혈이 심하지 않고 복통처럼 비특이적 증상만 나타나는 경우에는 진단이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 무서운 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합병증이다. 장 교수는 “PNH 환자들은 응고된 혈액이 혈관을 막는 혈전증 발생에 가장 주의해야 한다”며 “치료하지 않으면 5년 이내 35~40%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항응고 요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복통, 흉통, 숨가쁨, 콜라색 소변 등의 증상과 함께 혈관 내 용혈 정도를 나타내는 젖산탈수소효소(LDH·Lactate Dehydrogenase)가 정상치보다 1.5배 이상 상승했다면 혈전증 발생 위험이 높아졌다는 신호다. 혈관 내 혈전을 방치하면 신장과 폐혈관에 쌓이면서 급성 신부전이나 폐고혈압 등을 일으킨다. 혈액 내 다양한 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 기능이 저하되면서 감염, 출혈 등이 일어나고 백혈병, 골수섬유증 등 중증 합병증이 생길 수도 있다.



◇ 근본적 치료제 나왔는데 한해 약값만 ‘5억’…2년 기다림 끝에 보험급여 적용


불과 10여 년 전까지 PNH 진단을 받아도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다. 세척한 적혈구를 수혈해 모자란 적혈구를 보충하고 용혈이 있을 때 단기간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하는 식의 대증요법이 시행됐을 뿐이다. 혈전증과 같은 중증 합병증을 방지하려면 항응고요법도 지속해야 했다. 서씨 역시 빈혈이 심할 땐 한달에 네 팩씩 수혈을 받으며 버텼다. 사실상 시한부나 다름 없는 불안한 나날들이었다.

그 무렵 알렉시온(현 아스트라제네카)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말단 보체 억제제 ‘솔리리스’(성분명 에쿨리주맙)가 미국, 유럽을 넘어 국내 허가를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솔리리스는 선천성 면역반응의 일부인 보체계(complement system)를 구성하는 보체단백질 가운데 특이적으로 C5에 높은 친화력으로 결합하는 단일클론항체다. C5a와 C5b로의 분할을 억제해 말단 보체 복합체인 C5b-9의 생성을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말단 보체 매개성 혈관 내 용혈을 억제한다. 면역반응의 보체 조절 기능 손상에서 기인하는 PNH의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인 셈이다. 문제는 약값이었다. 국내 도입 당시 솔리리스 300mg 용량 한 바이알당 가격은 736만 원. PNH 성인 환자가 2주에 한 번씩 900mg을 투여받으려면 한해 약값만 5억 원이 넘는 수준이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아무리 희귀질환이라도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보니 정부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약’이라고 불렸을까. 서씨를 비롯한 PNH 환자들은 솔리리스의 급여 기준과 함께 투약 때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사전심의제도가 마련되기까지 2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서씨는 신약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사이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들도 있다. 환자들 못지 않게 마음을 졸였던 장 교수는 투여 직후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던 서씨의 말을 잊지 못한다.

더욱 눈에 밟히는 건 병이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음에도 급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신약을 투여받지 못하는 환자들이다. 국내 허가된지 13년이 지난 솔리리스는 지금도 바이알당 약값이 약 513만 원(약제급여상한액 기준)에 달한다. 평범한 일반인들이 감당하기엔 비현실적 가격이다. 병이 진행 중인 걸 알면서도 아직 합병증이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험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장 교수는 “국내 PNH 환자 500명 중 당장 약물치료가 필요한 게 300명”이라며 “건보 재정 문제로 150명 정도만 혜택을 보고 있어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바이오시밀러를 비롯해 새로운 기전의 약제들이 등장한다면 약값이 저렴해질 것”이라며 “하루 빨리 국내에도 바이오시밀러가 도입돼 더 많은 환자들에게 치료 혜택이 돌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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