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사진) 전 이탈리아 총리가 12일 향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재임 중 부패·성추문·탈세 등 각종 스캔들은 물론 경제도 침체에 빠졌지만 네 차례에 걸쳐 9년 2개월 동안이나 집권하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역대 최장 기간 총리 재임 기록을 세웠다.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메디아셋 TV네트워크 등 현지 매체들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날 밀라노 산라파엘레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는 2년 전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아왔다. 올해 들어서는 백혈병에 따른 폐 감염 증상으로 4월 5일부터 45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으며 이달 9일 같은 증상으로 재입원한 후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 대해 “이탈리아에서 가장 화려한 정치인 중 한 명이자 유럽 정치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1936년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1960년대 건설업으로 부를 축적했으며 1980년대 이탈리아 최대 규모 상업방송 ‘메디아셋’을 설립하며 대표적인 언론 재벌이 됐다. 1990년대에는 정치인으로 변신, 1994년부터 2011년 사이 총리를 세 차례 지냈다. 2005년 중도 개각으로 총리에 오른 것을 포함하면 총 네 차례에 걸친 셈이다.
그는 전후 최장 기간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불명예스러운 기록으로 가득하다. 집권 기간 내내 온갖 성추문, 비리, 탈세, 마피아 연루 의혹 등 갖가지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한때 국내총생산(GDP) 세계 5위였던 이탈리아가 ‘유럽의 병자’로 전락하는 데 적잖은 책임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2011년 마지막으로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할 때도 유로존 재정 위기로 경제가 위기에 처한 게 결정적 이유가 됐다. 2013년에는 탈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열린 조기 총선에서 그는 전진이탈리아(FI) 정당을 이끌며 10년 만에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집권 연정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별다른 직책은 맡지 않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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