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환자가 치료할 병원을 찾아 구급차를 타고 전전하다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등 의료 공백 사태가 곳곳에서 벌어지며 정부가 의사단체와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을 놓고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대정원 확대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의사단체와 정부만 논의에 참여하는 데 대해 '밀실 협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6일 성명을 통해 "국가의 중요 보건의료 정책인 의료인력 수급 문제를 이해당사자와 협의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논의 구조"라며 "10여 차례 회의를 가졌음에도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는 의사 단체의 아집과 무논리, 이를 돌파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무능한 정부를 보며 개탄스러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경실련의 이 같은 입장은 지난 15일 열린 '제11차 의료현안협의체'를 겨냥한 것이다. 의료현안협의체는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각종 보건·의료 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총 11번의 회의가 열렸고, 지난 8일 10차 회의 당시 양측은 필수의료 붕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의대정원 확대를 논의하자는 데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주일 만인 11차 회의에서 의협이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한다고 입장을 번복하자 이를 비난한 것이다.
경실련은 "의사가 없어 적기에 치료하지 못하고 환자가 죽어가는데 도대체 누구의 입장을 더 고려해야 하느냐"며 "정부는 이제라도 시민사회와 전문가, 지방정부까지 참여하는 폭넓은 사회적 논의체를 구성하고 실효적인 의대 정원 확대 방식과 규모를 논의해야 한다"고 쏘아 붙였다. 의협을 향해서는 "의료계는 설득과 논의의 대상일 뿐, 지금처럼 허락을 구하는 합의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의과대학을 신설하자는 주장도 다시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전라남도 국회의원 10명도 이날 성명을 통해 "의료현안협의체를 중단하고 환자단체가 포함된 새로운 협의체를 가동하라"고 촉구했다. 성명서에는 △김승남 △김원이 △김회재 △서동용 △서삼석 △소병철 △신정훈 △윤재갑 △이개호 △주철현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라남도 국회의원 10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의사 정원을 늘리는 데 복지부와 의협만 협상 테이블에 참가하고 있다"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기는 꼴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지금처럼 의료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인 환자를 빼놓고 협상하는 건 사실상 '밀실 협상'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2019년에 제정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규정하는 보건·의료인력 정책심의위원회가 존재하는 데도 윤석열 정부와 복지부가 의협에 끌려다니고 있다"며 "전남권 의과대학 신설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가겠다"고도 밝혔다.
이 같은 비난이 이어지자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를 거친 뒤 환자 단체와 전문가, 법률가 등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 필수의료 지원 방안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의협은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의료 강화의 근본 대책을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기피과 지원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며,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 오히려 부작용만 키울 것이란 게 의협 측이 내세우는 이유다. 의대 정원 확대 보다는 의료수가 정상화와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5일 의협을 대표해 의정협의체에 참석한 이광래 인천광역시의사회장은 “당장 내년부터 인턴이 전공 과목 선택 시 필수의료, 산부인과, 소아과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며 "확충된 인력이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로 유입될 수 있는 구체적 실행 방안이 담보돼야 만 생산적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사 인력 확충으로 우리나라 국민 의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이는 건보 재정을 파탄나게 하고 결국에는 모든 국가가 부러워하는 세계 최고의 한국 건보 제도와 시스템을 붕괴시킬 것"이라며 "정원이 늘어난 의대는 우리나라의 우수한 인재들을 모조리 흡수해버려 과학분야, 이공계 분야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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