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교육 개혁의 칼을 꺼내 들었다. 공교육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능을 방치한 것이 사교육비를 사상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공정한 변별력을 통해 대학 입시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주목해야 할 점은 윤 대통령이 수능 개편뿐 아니라 유보통합, 대학 혁신 등 굵직굵직한 교육 개혁 과제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부처 간 갈등으로 개혁에 제동이 걸리는 일을 막겠다는 뜻이다. 다만 법 개정이 필요한 개혁 과제도 있어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속도가 더딜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우선순위로 꼽은 개혁 과제는 수능 개편이다. 사교육비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정권 출범 이후에도 사교육비가 고공행진을 이어가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 출범 첫해인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으로 2007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윤 대통령이 교육부에 수능 개편을 주문한 시기도 사교육비 관련 통계가 발표된 3월부터다. 윤 대통령은 당시 교육부에 공교육을 벗어나는 문제가 수능에 출제되지 않게 하라고 주문했다. 카르텔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교육 당국을 겨냥한 데는 지시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윤 대통령은 방향키를 직접 잡고 교육 개혁 과제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서 교육 개혁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교육부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만 수능을 5개월 앞두고 수능 개편 얘기가 나오면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곧 있으면 수시 시즌이 시작되는데 고3 학생 입장에서 수능을 봐야 할지, 수시를 지원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변별력이라는 표현이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변별력을 유지하면서도 공교육 범위에서 문제를 출제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이 학생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짚었다.
수능 개편만으로 사교육비를 줄이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수능이 쉬워진다고 사교육비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변별력을 위해 대학들은 여러 제도들을 도입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또 다른 사교육을 해야 한다”며 “범사회적 복지 시스템, 직업 구조의 양극화와 이원화 등의 문제가 함께 논의돼야만 사교육 비용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교육 개혁을 지시하면서 사교육비 경감 외에 다른 교육 개혁 과제들도 속도를 내고 있다. 유보통합이 대표적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해 관리하는 ‘유보통합’의 선결 과제인 조직 개편 작업이 마무리됐다.
대학 혁신 사업 중 하나인 글로컬 대학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계대학의 퇴로를 마련하는 대학 구조 개혁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개혁 과제들을 직접 챙기면 부처 간 협업 등이 힘을 받을 수 있어 속도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과제들도 있어 개혁 완수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보통합의 경우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다. 여야 의원 간 이견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린이집 관련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나 복지부에서 시도교육청으로 넘기기 위해서는 유아교육법·영유아보육법으로 나뉜 기본법 체계부터 손질해야 한다. 교육부는 조직·재정에 대한 ‘관리 체계 통합 방안’을 이달께 수립해 9월까지 관련 법령 제·개정을 추진하고 2025년부터 유보통합에 나설 계획이다.
대학 개혁은 여야 의원 간 의견차가 있어 법 통과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립대학 구조 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은 지난해 9월 여당인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이 제정안을 발의했으며 현재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야당에서도 교육위 소속의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사립학교의 구조 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야는 ‘해산장려금’ 지급 여부를 두고 대립하는 상황이다.
또 지역 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추진 방안의 경우에도 교육부가 갖고 있던 대학의 행·재정 권한을 지역으로 넘기고 사업 추진에 필요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지방대학 및 지역 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 의원은 “사립대학 구조 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은 글로컬대학과 RISE 사업과도 맥이 닿아 있다”며 “법안 통과를 위해 여당 의원 설득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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