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경기 안양 지역 초등학교 교장이 여자 교직원 화장실에 들어가 소형 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었다. 이후 일선 학교에서는 불법 카메라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동원된 주체는 당연히 학교 교사들이다. 가뜩이나 많은 행정 업무에 허덕이는 교사들에게 과외의 일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A 교사는 “당시 교사들이 직접 화장실에 들어가 카메라가 있는지 확인했다”며 “정수기 관리, CCTV 관리 등 행정 업무가 너무 많아서 기본적인 수업을 위해 연구할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19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 개혁을 내건 윤석열 정부는 교사 경쟁력을 강화하고 수업의 질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공교육을 정상화함으로써 사교육을 줄이겠다는 포석이다.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의 핵심 축인 교사들이 수업과 무관한 행정 업무에 치이면서 제대로 된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올 4월 한국교육학회 주최로 열린 교육정책포럼에서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가 맡고 있는 학급 경영 업무는 200여 가지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행정 지원 업무와 학교 관련 친목 행사 등 비공식 업무까지 제대로 하려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는 교육 현장에 있는 교사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10명 중 7명이 수업에만 집중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냈다. 설문에서 선생님들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68.3%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수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응답은 13.8%에 그쳤다.
교권 추락이 교사들의 학습지도 의지를 빼앗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실제로 수업·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없는 요인(3개 선택)으로는 ‘과도한 학생 인권, 생활지도 권한 부재로 인한 교권 추락(22.5%)’이 가장 많이 꼽혔다. 그 뒤를 ‘학생·학부모와의 갈등, 민원, 소송 부담 가중(21.2%)’ ‘더하기만 있고 빼기는 없는 비본질적 행정 업무(19.2%)’가 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학습과 관련한 최종 결정권을 일선에서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교수는 “학교를 혁신하려면 학생들을 실제로 상대하고 있고 학생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이러한 특성을 가진 전문가를 제대로 찾아낼 수 있는 기본 인프라가 갖춰질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교원 단체들도 대안 마련에 나섰다. 교총은 최근 ‘생활지도 면책권 부여’를 골자로 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 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또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전달하고 법안 발의 및 통과를 요청했다. 교총의 개정안은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대해서는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는다’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최근 관련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반대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인한 교원들의 고충도 이해하지만 그 해결이 아동복지법상 학대 예방을 위한 금지 조항에 예외를 인정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 ‘수능 개편’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정성국 교총 회장은 “선생님들이 학력이 떨어지는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전공과목만을 가르치다 보니 킬러 문항으로 지목되는 융합형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결국 입시 제도를 개선하는 게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교육 경감과 수능 제도 개편, 공교육 정상화가 다 맞물려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이 제대로 된 진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교육부도 21일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에 이어 다음 주에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순차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학교 기능을 되살리기 위해 교사의 수업 평가 역량을 강화하고 교권 보호 등 교사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공교육이 교육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학벌 사회 개선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우리나라 사교육 경쟁은 일종의 냉전 시대 군비경쟁과 비슷해 내 옆에 있는 친구보다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 결국 돈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며 “정부의 교육 개혁에는 학벌 사회 해소 방안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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