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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급발진 사고' 손자 잃은 할머니측 "30초간 페달 착각 불가하다"

할머니 측 "EDR 신뢰 못해…운전자가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행동"

"13초 간 페달 착각 불가하다는 판례 있어…이번 사건도 마찬가지"

지난해 12월 사고 당시 모습. 사진=강릉소방서 제공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의 두 번째 변론 기일을 앞둔 가운데 운전자 측이 최근 판례와 과거 사례를 들어 급발진 주장 논리를 강화하고 나섰다.

26일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에 따르면 최근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 낸 준비서면을 통해 사고기록장치(EDR)의 신뢰성 상실 근거와 최근 급발진 주장 운전자의 무죄 판결을 언급했다.

원고 측은 ‘운전자가 차량이 오른쪽으로 뒤집히면서도 가속 페달을 99% 계속 밟았다고 EDR에 기록된 사례가 있다’며 EDR 기록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차량 전복 과정에서 몸이 옆으로 쓰러지기 때문에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변함없이 100% 또는 99% 똑같이 지속해서 밟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마찬가지로 ‘차량이 벽을 뚫고 나가면서 정신을 잃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100% 계속 밟았다’는 EDR 기록 사례 역시 에어백이 터져 얼굴에 맞으면서 자세의 균형을 잃은 운전자가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원고 측은 과거 2건의 급발진 사례와 이번 사건 운전자 A씨의 사례 모두 EDR 기록이 '가속페달 변위량 99% 혹은 100%, 브레이크 OFF'인 점과 이 같은 기록을 두고 자동차 분야 전문 교수가 '급발진 사고에서 예외 없이 나타난 현상'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점을 들어 EDR의 신뢰성 상실을 강조했다.

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부터 '풀 액셀'로 평가된다.

A씨 측은 또 사망사고를 내고 차량 급발진을 주장한 운전자가 형사사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최근 판례와 A씨 사건의 유사성을 짚었다.

대전지법은 이달 중순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기소된 50대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A씨 측은 해당 재판부가 '약 13초 동안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는 과실을 범하는 운전자를 쉽게 상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을 언급하며 '13초보다 2배 더 길게 약 30초 동안 지속된 이 사건 급발진 과정에는 더 확실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전지법에서 급발진 차량의 속도가 시속 10.5㎞→37.3㎞→45.5㎞→54.1㎞→63.5㎞→68㎞로 증가하는 과정에서 가속페달 변위량이 50% 이하로 계산되었던 사실을 근거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판단도 A씨 사례에 적용 가능하다고 내세웠다.



사고 5초 전 차량의 속도가 110㎞인 상태에서 분당 회전수(RPM)가 5천500까지 올랐으나 '속도가 거의 증가하지 않은' 사실과 '100% 가속 페달을 밟았다(풀 액셀)'는 국과수의 EDR 검사 결과가 모순되므로 EDR 감정을 통해 급발진을 입증할 수 있다는 취지다.

강릉지원 민사2부는 오는 27일 A씨와 그 가족들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6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사건의 두 번째 변론기일을 열고, 전문 감정인을 선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의 첫 재판이 23일 오후 춘천지법 강릉지원에서 열렸다. 사진은 전국에서 모인 탄원서 1만7000여부 모습. 사진=연합뉴스


앞서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다.

이 사고로 A씨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다.

A씨는 지난달 23일 사고 관련 첫 재판에서 “사랑하는 손자를 잃고 저만 살아남아서 미안하고 가슴이 미어진다”며 진실 규명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누가 일부러 사고를 내 손자를 잃겠느냐. 제 과실로 사고를 냈다는 누명을 쓰고는 죄책감에 살아갈 수 없다”며 “재판장님께 진실을 밝혀주시길 간절히 바란다" 고 호소했다.

A씨의 아들도 발언권을 얻어 “급발진 사고 원인을 전적으로 운전자에게 입증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위이며 폭력”이라며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돼야 하느냐. 대한민국에서 급발진 사고는 가정파괴범이자 연쇄살인범”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부디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주시고, 대한민국이 ‘옳은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사회'라는 것을 알려달라”며 “급발진 사고 시 승소한 첫 사례가 되어 다시는 제조사가 방관하고 묵과하지 않도록 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질 수 이도록 국회의원분들께도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한편 A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된 바 있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로 12살 손자를 잃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60대 할머니가 지난 3월 20일 첫 경찰조사를 마치고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경찰서를 떠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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