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의 인권과 권리를 지지하기 위한 문화행사인 성소수자(퀴어) 축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퀴어는 본래 ‘이상한, 기이한’ 등의 뜻으로 과거 동성애자를 비하하거나 경멸할 때 사용됐지만, 현재는 성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성소수자들의 삶과 시선을 담아낸 영화들을 소개하는 한국퀴어영화제는 이미 이번주 초부터 온라인 상영을 시작했다죠. 올해는 글로벌 제약사 GSK의 한국법인이 제작한 단편영화도 공식 상영작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제약사가 웬 영화 제작이냐고요? 오랜 기간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앞장 서 온 회사로서 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실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들의 사례를 군대, 가족, 입사 에피소드로 표현했다고 하는데요. ‘YOU=YOU’라는 영화 제목은 ‘당신(YOU)도 당신(YOU)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HIV 검출 수준이 일정 수준(HIV-1 50 c/mL) 이하이면 전파 위험성이 없다’는 2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에이즈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나 사실 에이즈만큼 사회적 낙인과 편견이 심한 감염병이 있을까 싶습니다. '에이즈=불치병'이란 인식도 그 중 하나일텐데요. 결론부터 말하면 에이즈는 치료가 어려울 뿐, 더이상 불가능한 병이 아닙니다. 의료계에서는 체내 HIV 증식을 막는 원리를 통해 당뇨·고혈압처럼 꾸준히 약을 복용하기만 하면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여겨지고 있죠. 아직 일반화된 치료법은 아니나 올해 2월에는 독일의 50대 남성 환자가 건강한 기증자의 줄기세포를 이식받고 전 세계 3번째로 에이즈 완치 판정을 받은 사례가 보고됐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가능하게 한 mRNA(전령리보핵산) 기술을 통해 에이즈까지 정복할 수 있다는 희망도 제기되고 이죠.
실제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로 불리는 매직 존슨은 1991년 HIV 감염을 확인하고 31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지만 32년이 지난 지금도 생존해 있습니다. 현재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약 78세로 비감염인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제목처럼 바이러스 수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바이러스 전파 위험도 없다고 해요. 존슨이 은퇴할 당시만 해도 HIV 바이러스 보균자는 고작 8~10년을 살았습니다. 에이즈 진단이 사형선고나 다름없이 여겨질 수 밖에 없었죠. GSK는 HIV의 첫 발견 후 4년만인 1987년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 '지도부딘'을 개발했습니다.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서 자신의 RNA를 DNA로 역전사하는 과정을 차단해 HIV 증식을 막는 원리로 에이즈 증상 발현을 늦췄는데요. 유사한 기전의 치료제가 쏟아져 나왔지만, 끊임없이 내성이 발현된다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에이즈 치료는 1996년에 3가지 이상의 약을 병합해서 사용하는 일명 '칵테일요법'으로 HIV를 지속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임상 시험 결과가 발표되면서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습니다. 한 가지 약만 복용하면 수주 만에 약제에 내성을 가진 변종바이러스가 생겨 치료실패 확률이 올라가다 보니,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처음부터 단백분해 효소 억제제를 포함해 3가지 이상의 약을 섞어서 복용하게 한 시도가 효과를 거둔 거죠. 전문용어로는 강력한 항레트로바이러스치료(HAART)라고 불립니다. 퀸의 메인 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시기가 1991년이라 '신약이 조금 일찍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안타까워하는 팬들도 많다고 하네요.
이후 신약 연구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HIV 바이러스의 핵산을 숙주의 염색체 안으로 삽입시키는 통합효소가 주목을 받게 됩니다. 통합효소억제제 '돌루테그라비르'가 2013년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최근에는 2가지 성분을 한 알에 담은 복합제도 등장했죠. 기존에 주로 쓰이던 3제요법보다 성분을 하나 줄이고도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물이 개발된 겁니다. 하루 한 알만으로 HIV 바이러스 관리가 가능해지면서 불가능할 것 같던 에이즈 정복의 희망이 열린 과정은 놀랍습니다. 언젠가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가운 시선도 달라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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